[스페셜리포트]대전환기 맞은 상생결제, 정부·지자체 도입 쉬워진다

중기부 '상생결제' 정부기관 최초 도입
"별도 예산 없이 국가 부가가치 창출"
법령 개정·약정 간소화 추진으로
협약은행·기관 지속 확대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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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결제가 민간기업을 넘어 정부 기관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판매기업이 대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2·3차 판매기업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을 넘어 정부가 직접 상생결제 도입에 나선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상생결제 도입 첫 테이프를 끊으며 시장 변화를 주도하는데 나섰다.

[스페셜리포트]대전환기 맞은 상생결제, 정부·지자체 도입 쉬워진다

◇현금결제 69.5일 vs 상생결제 31.8일

상생결제는 동반성장 추진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가장 큰 경영 애로인 결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 4월 처음 도입됐다. 은행에서 운영하는 결제상품으로 대기업·국가 등에 직접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1차 판매기업뿐만 아니라 N차 판매기업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결제수단이다.

상생결제는 2018년 처음으로 연간 결제액 100조원을 돌파하며 기업간 유력한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구매기업과 1차 협력기업 간 결제액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지만 2차 이하 거래기업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기업간거래(B2B)는 외상이 기본 바탕이다. 구매기업은 제품·서비스 구매 후 60일 이내에 구매대금을 지급하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판매기업은 판매대금 회수에 걸리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매달 결제해야 하는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등을 제때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판매기업은 시간이라는 '사각지대'에 항상 놓여있는 셈이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발간한 '2021년 상생결제제도 경제효과분석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판매대금 회수기간은 현금결제일 경우 69.5일이 소요됐다.

반면에 1차 거래기업이 받은 상생결제 평균 결제일은 31.8일로 나타나 현금결제보다 상생결제 시 지급 안정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기준으로 결제기간 분포를 살펴보면 15일 이하(43%), 60일 이하(34%), 60일 초과(14%), 30일 이하(9%)로 조사됐다.

특히 제도 출범 후 단 1건의 미지급 사례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고무적이다. 이는 구매기업이 판매기업에 반드시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과 사실상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구매기업 경영상황과 무관하게 판매기업이 대금을 회수할 수 있어 연쇄부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근 금리가 치솟았지만 판매기업은 은행에서 3~5%대의 낮은 비용으로 판매대금을 조기에 현금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LG전자 1차 판매기업인 A사가 회생절차에 돌입하자 2차 판매기업인 B사가 A사로부터 판매대금을 회수하지 못할까 봐 납품을 거부했다. A사는 상생결제 지급을 약속하고 B사에서 부품을 안정적으로 수급받았다. 이후 2021년에 회생절차를 무사히 졸업했다.

◇“정부·지자체로 확산하면 연간 GDP 약 21조원 증가 효과”

상생결제 도입 7년이 지나면서 민간기업을 넘어 정부와 지자체로 상생결제를 확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정부기관 중 처음으로 상생결제 지급을 시작하며 물꼬를 텄다. 중기부는 앞으로 상생결제 지급규모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중기부가 상생결제 지급에 나선 것은 공공 분야 판매기업의 안전한 대금 회수는 물론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재정학회가 발표한 '상생결제제도 경제효과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에서 2020년 119조8000억원 구매대금이 상생결제로 지급됐는데 이로 인해 2020년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이 35조2953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유추하면 작년 중앙부처의 정부조달계약액 22조7000억원, 지자체 총구매액 48조8000억원을 합친 71조5000억원 예산을 상생결제로 집행하면 연간 약 21조원 GDP가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별도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국가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기업의 매출·고용·투자 확대에 기여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중기부는 해석했다.

◇“상생결제 일괄계약 지원 검토, 협약은행 확대 추진”

상생결제를 공공분야로 확대하려면 여러 과제 해결이 시급하다.

먼저 시스템 연동이다. 상생결제를 도입하려면 예산집행시스템인 e호조시스템 등과 연동이 필수다. 현재는 상생결제시스템과의 연동이 불안정해 원활히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여러 지자체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e호조 시스템은 이미 상생결제시스템과 연동돼 지자체가 은행과 상생결제 약정을 체결하는 등 행정처리를 마치면 e호조에서 상생결제 지급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차세대 e호조 시스템도 현재 시스템 수준으로 연동하기 위해 조만간 연동 테스트를 시작할 것”이라며 “행안부와 협의해 불편 없이 상생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작년 한 해에만 142조8000억원이 상생결제로 지급됐지만 이를 지급받은 기업이 자사가 상생결제를 적용받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기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지난달 12개 시·도 광역지자체에서 실시한 '찾아가는 상생결제제도 설명회'에서는 제도 취지는 좋지만 개념이 생소해 제도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의견이 다수 접수됐다.

실제로 2019년 12월 감사원이 실시한 공공기관 불공정관행 및 규제 점검에서 '공공기관이 계약업무 수행 시 상생결제를 적극 도입·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면에 이를 지자체에서도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중기부는 향후 지자체가 계약 업무에 상생결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방계약법 제4조를 활용해 '상생결제 운영요령(중기부 고시)' 등 관련 법령과 규정 개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또 226개 기초지자체의 편리한 상생결제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12개 상생결제 협약 금융기관(우리·기업·신한·하나·국민·농협·제일·경남·대구·전북·부산은행, 현대커머셜)과 은행연합회, 관련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일괄 약정체결 등 지자체 약정 간소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광주·제주은행 등과 협의해 상생결제 협약은행도 추가할 방침이다. 새마을금고·수협·신협·지역농협 등 지역 사용자가 많은 금융기관도 지속 추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기부는 상생결제 1차 기업을 넘어 2차 이하 기업으로 상생결제 낙수 효과를 확산하기 위해 평가 인센티브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동반성장위원회의 내년도 동반성장평가에 상생결제 2차 이하 지급실적 배점을 기존 2점에서 5점으로 상향되도록 추진키로 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어음을 상생결제로 대체한 경우 평가점수(4점)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15년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누적 상생결제 단계별 운용액은 1차 기업이 98.4%(764조2435억원)에 달했으나 2차 이하 기업은 1.9%(12조1441억원)에 그쳤다. 상생결제 활성화가 2차 이하 기업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 외에 중기부는 사용자 편의성 향상도 지원할 계획이다. 민간에서 활용하는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과 상생결제시스템을 연동해 회계부서에서 쉽게 상생결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또 기업의 다양한 수요가 빠르게 반영될 수 있도록 은행들과도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