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디지털 인재 양성, 다윗의 지혜와 용기 필요

[미래포럼]디지털 인재 양성, 다윗의 지혜와 용기 필요

10여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명량'이 총 관객수 1761만5686명으로 지금까지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후속편이라는 '한산:용의 출현' 역시 올해 상영 1개월 만에 700만명을 돌파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크게 승리한 역사적 사실을 극화한 것에 국민이 열광하는 것은 조선시대 두 차례나 전 국토가 일본에 유린되고 근대에도 치욕적인 식민지로 전락한 고통의 역사를 뼛속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송시열이 편찬한 '율곡연보'에 따르면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9년 전인 계미년(1583년) 4월 선조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10년을 못 가서 토붕(土崩)의 화가 있을 것이니 미리 십만의 군사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서애 유성룡의 반대와 동·서인 간 당파 정쟁 때문에 10만 양병론은 무산됐고, 그 결과 속절없이 일본의 침략을 받아 처참하게 짓밟혔다고 생각하니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올해 포스트 팬데믹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변이 바이러스가 지속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해서 답답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필자가 디지털팀 일원으로 참여해 공약으로 제안한 내용 가운데에서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을 추진한다는 정책이 지난달에 발표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5년 동안 필요한 디지털 인재 수요가 약 73만8000명임에도 지나치게 숫자만 부풀렸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정부가 목표로 삼은 100만명조차 산업계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하니 양성만 잘된다면 수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무엇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당장 필요한 정보교사 확충도 문제이지만 후속으로 발표한 개정 교육과정 내용을 살펴보니 학기 내에 '반드시 정보화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학교 측이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로 나타나 실행력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정쟁 결과로 무산된 것처럼 정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확실한 책임감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학 교육 현장에서 'IT 취·창업 진로 실무'를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당연히 고객(산업계 등)의 구인 동향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올해 하반기 채용 흐름 가운데 눈에 띄는 항목이 다재다능한 '폴리매스(Polymath)형' 인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폴리매스형 인재란 박학다식해서 이질적인 분야들을 융합시키는 인재라고 하는데 과연 입시 위주의 현 교육제도와 학제 간 융합이 잘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커리어 모자이크(Career Mosaic)형' 인재 역시 요구한다. 여러 경력을 갖춘 이른바 'N잡러'인 편향된 디지털 인재들이 깊고 넓게 경험을 갖춘 다양한 역량까지 갖출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충분한 수의 인재 양성에는 공감하지만 인류사의 패러다임 변곡점에서 글로벌 혁신을 주도한 것은 소수의 리더였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들은 기준이 설정되기도 전에 변화를 주도했는데 우리도 세계 최초로 B형 간염 백신을 발명하고도 기준이 없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긴 사실을 고려한다면 100만명의 디지털 인재만큼이나 단 몇 명이라도 거북선을 만들어서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아시아 최초로 인터넷을 개척한 전길남 교수나 모바일 세계를 연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세계적 기준 자체를 만들 수 있는 탁월한 디지털 리더급 인재가 더욱 필요하다.

2008년부터 정보 교과 강좌 개설 의무화 자체가 사라져서 관련 학과가 폐쇄되고 10여년 동안 소프트웨어 교육의 암흑기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삼삼오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뒷골목에 모여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애타게 갈구하던 적이 있었다. 디지털 인재 양성 정책이 잘되려면 거대한 골리앗을 내세운 절망적인 전쟁 상황에서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개울가에서 주운 다섯 개의 물맷돌만으로 재빠르게 승리한 다윗처럼 지혜롭고 용감하게 추진되기를 소망한다.

전상권 서일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skchun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