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너무 부지런한 국회의원

국정감사 모습 <전자신문DB>
국정감사 모습 <전자신문DB>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정말 부지런하다. 법안 발의 등 의정활동을 하면서 당과 관련된 정치 이슈 대응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의원총회는 물론 각종 항의방문에도 동참, 결집력을 보여야 한다.

틈틈이 자기 지역구도 챙겨야 한다. 다음 선거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천이라도 받으려면 지역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다져 놔야 한다.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고, 작은 민원에도 귀 기울이는 등 유권자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년 가을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더욱 바빠진다. 주요 자료 취합과 분석은 보좌진의 몫이지만 그래도 진두지휘하는 것은 국회의원이다. 수시로 회의를 소집해서 질의 내용을 준비한다. 국감도 일종의 경쟁이다. 다른 국회의원보다 돋보이거나 파급력 큰 이슈를 던지면 단박에 '스타의원'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간혹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비교 기준이 적절치 않은 자료를 내밀어 실소를 유발한다. 국회의원이 먼저 흥분해서 답변은 듣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만 높인다.

아무래도 1년에 한 번 하는 국감이다 보니 의욕이 넘쳐 난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감사를 넘어 일반 기업으로 관심의 폭을 넓힌다. 기업 최고경영진을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무더기 호출한다. 소비자 불만과 사회 문제를 이유로 서비스 오류 및 제품 불량에서 가격 인상, 위기 대응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슈를 챙긴다. 사외이사나 주주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셈이다.

기업의 사업 행태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는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규제하지 못한 행정기관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이 직접 기업 경영진을 불러서 이것저것 물으며 시정을 지시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도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기업에서 근무하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부지런함이 과도하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입법 데이터 분석업체 폴메트릭스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총 623명으로 전체 1840명에서 3분의 1에 이른다. 올해 국회에도 많은 기업인이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호출됐다. 그나마 그룹 총수는 부르지 않겠다면서 부지런함을 조금 양보했지만 제조에서 서비스·플랫폼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인을 국감 증인 명단에 올렸다. 기업인을 출석시켜서 소득이라도 올리면 좋을텐데 과거 사례를 보면 국회의원은 호통치고 기업인은 설명할 틈을 찾기도 어려워하는 장면만 떠오른다.

1개월 남짓한 기간에 수많은 피감기관을 들여다보려면 시간이 얼마나 부족한가. 국회의원의 질의 한 번 받지 못하고 국회에서 대기만 하다 돌아가는 피감기관이 수두룩하다.

앞으로 국감에서는 국회의원이 이들 피감기관에 집중하고, 기업인에 대한 관심은 조금만 줄여 보면 어떨까. 부지런함이 지나친 나머지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기업인을 감독하는 일까지 맡을 필요는 없다. 기업이 잘못된 행태를 보이면 국회가 아니어도 소비자와 주주가 해당 기업에 경고할 것이다.

오히려 국민은 국감장에서 맥없이 앉아 있는 기업인보다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업인을 원한다. 그래야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고,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도 유지·창출되기 때문이다.

점점 열기가 달아오르는 2022년 국감 시즌, 국회의원들이 기업인과 관련해서 만큼은 조금만 덜 부지런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호준 전자모빌리티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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