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개인정보 염탐한 수사기관

통신사로부터 받은 통신자료 제공내역, 지난해 공수처 관련 제공건 일부는 1년이 지나 더는 조회조차 불가능하다. 통신자료제공내역 캡처.
통신사로부터 받은 통신자료 제공내역, 지난해 공수처 관련 제공건 일부는 1년이 지나 더는 조회조차 불가능하다. 통신자료제공내역 캡처.

지난해 '고발 사주' 사건이 정치권의 태풍으로 떠올랐을 때였다. 당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자료 내역을 현재 사용하는 통신사에 요청했다.

약 한 주 뒤 받은 결과물은 사뭇 충격이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공교롭게도 대부분 개인정보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세 차례 가져갔다. 제공받은 서류에는 통신사가 △고객명 △주민번호 △이동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 등을 공수처에 제출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문득 개인정보를 또 가져간 곳이 있는지 궁금했다. 10월 초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내역을 다시 요청했다.

이번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방검찰청(창원지검)이 개인정보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번에 가져간 정보도 똑같았다. △고객명 △주민번호 △이동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 등이었다.

수사기관이 별다른 제지 없이 통신사를 통해 개인정보를 가져가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수사 기관들은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라고 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꼭 필요한 정보만 요청해 가져가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것인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만약 정말 필요해서 가져간다면 적어도 사유를 상세히 알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통신사나 수사기관이 정보를 가져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신사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것 뿐이다. 단순히 '수사 중인 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변은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다.

가져간 정보를 수사가 끝난 이후 어떻게 파쇄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수사 종결이 언제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다. 심지어 통신사가 수사기관의 자료 제출 요구를 저장하는 기간도 짧다. 현재 사용 중인 SK텔레콤은 1년이 지나면 조회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개인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기관 판단에 따라 국민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셈이다. 소송과 고발 등에 나름 익숙한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가져갔다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낄 국민은 많을 것이다.

지난해 정치권은 수사기관의 마구잡이 개인정보 수집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당시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공수처의 무더기 자료수집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치권에서는 관련 수사 관행과 제도를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과정에서 관련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을 제1야당에 대한 침탈이자 탄압으로 규정하고 있고 정부·여당은 전 정부 지우기, 색깔론 등을 펼치며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그사이 민생은 뒷전이고 소중한 개인정보를 지킬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치는 사람들과 멀다.

최기창 증명사진
최기창 증명사진

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