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수요가 갑자기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전방 산업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에서 제조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주요 시장은 스마트폰, PC, 서버, 가전, 자동차 등 완성품이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모두 내년 출하량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1000만대 감소한 2억6000만대를 출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도 수요 감소를 반영, 아이폰 14 출하량을 조정하고 있다. PC 시장과 가전 시장 역시 판매 감소가 뚜렷하다.
데이터 처리 양 증가로 성장세가 견조할 것이라고 믿었던 서버·데이터센터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미국 상위 10개 클라우드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상반기까지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고 분석하면서도 내년 설비 투자는 5%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데이터센터 업체들은 올해까지 설비 투자를 확대하지만 내년부터 증가 폭을 좁힐 것으로 전망된다. 고부가가치 제품이 서버향 반도체 시장의 생각보다 큰 수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의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내년 파운드리 '암흑기'가 예고됐다. 최근 대만 언론에 따르면 TSMC 주문량은 지난 9월 말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주문 감소 추세는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 미디어텍, AMD 등 핵심 고객사가 주문 물량을 줄인 영향이 크다.
TSMC가 연말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3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주문량도 40~50%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 8인치 파운드리 가동률이 90%까지 떨어졌다고 분석하면서도 4~7나노급 첨단 공정(12인치)은 가동률을 95~100% 유지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유지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2위 파운드리인 삼성전자 역시 내년 시장 불황을 예고한 바 있다.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올해까지 최대 매출과 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2023년은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과 경기 둔화 및 고객사 재고 조정 영향으로 상반기는 수요가 둔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 등 시장 상황이 업계에 녹록지 않게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서는 내년 하반기 파운드리 시장의 턴어라운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생존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파운드리 업계는 유례없는 수요 감소에 대응, 신규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등 그나마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을 발굴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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