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유통칼컴]캐멀과 유니콘

[플랫폼유통칼컴]캐멀과 유니콘

불과 얼마 전까지 수익성보다 성장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스타트업 투자자가 이제는 수익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속도보다는 안정성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대혼란에 빠졌다. 주식시장 활황과 풍부한 유동성으로 유니콘을 꿈꾸며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시장 상황이 변했다. 투자 받기도 어렵고, 투자를 받아서 잘 성장한 규모 큰 스타트업도 추가 투자는 물론 상장까지 어렵게 되자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신세가 됐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캐멀'(Camel)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유니콘의 환상보다 혹독한 환경을 견뎌 내는 낙타와 같이 적응력과 생존력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의미한다. 꾸준히 실적을 올리며 결국 성공을 거둔 대기만성형 스타트업을 일컫는다. 캐멀은 사업 초기부터 수익 창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유니콘과 다르다. 강력한 수요가 있는 제품으로 시작하고,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며 더디더라도 견실한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프랑스 비바테크 2022'에 연사로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30년까지 '유니콘 기업' 100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고, 전 세계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인재가 프랑스로 모여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스타트업 불모지'라 불리던 프랑스를 유니콘 스타트업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세계 경제대국도 스타트업의 성장과 안정 속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캐멀이냐 유니콘이냐'는 곧 '버티기냐 죽어도 성장이냐'의 문제다.

벤처캐피털은 얼마 전까지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비용 절감'을 요구한다.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갑자기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수익 모델을 강화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투자를 줄이면 성장이 멈춘다. 성장이 멈추면 스타트업은 좀비기업이 된다. 그러면 결국 투자자와 스타트업은 모두 패자가 된다.

유니콘은 물론 데카콘(Decacorn, 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유니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블리츠스케일링' 전략은 필수였다. 블리츠스케일링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효율보다 속도를 우선시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서 경쟁자를 따돌리는 초격차 전략을 말한다. 그래서 유니콘을 꿈꾸는 스타트업 모두가 '더 빨리, 더 빨리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이 전략을 '스타트업 바이블'로 삼았다.

구글, 넷플릭스, 우아한형제들, 쿠팡, 링크드인 등도 이 같은 방식의 경영전략을 펼쳐 왔다. 그러나 최근 불어닥친 스타트업 시장의 자금 경색으로 블리츠스케일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플랫폼유통칼컴]캐멀과 유니콘

투자시장에 혹한기가 닥치며 적은 금액의 투자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자보다 많은 돈을 계속해서 받아야만 가능한 블리츠스케일링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용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블리츠스케일링은 여전히 유니콘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왜냐하면 '승자 독식'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기업이 최종 승리자가 되는 플랫폼 경제와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블리츠스케일링이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블리츠스케일링이 가능한 건 아니다. 대부분은 높은 실패 위험성이 따르며, 시장 진입 속도가 비즈니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또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투자 심사도 이전보다 훨씬 깐깐하게 하더라도 이미 조성된 펀드에 아직 많은 양의 드라이파우더(Dry Powder, 투자 가능 자금)이 남아 있기 때문에 투자를 멈출 순 없다. 그야말로 옥석 가리기를 철저하게 해서 기업가치는 조정하더라도 '옥'에는 계속 투자해야 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시장점유율이 높은 선두기업이 투자받을 확률이 커지고, 그 자금은 다시 블리츠스케일링 가속화에 쓰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처캐피털 수익률은 전체 투자회사 가운데 단지 1~2개의 대박 스타트업으로 결정되는 파레토 법칙을 따라간다. 그래서 성과를 낼 극소수의 회사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은 성공적인 블리츠스케링을 수행한 스타트업일 공산이 높다.

매년 수천억원에서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 가던 쿠팡이 창사 이래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인식되던 플랫폼 기업의 투자가 '계획된 적자'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니콘과 캐멀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스타트업은 각자 독특한 자신만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고, 경영철학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니콘 기업이 많이 탄생해도 대기업을 상대로 한 기업간거래(B2B) 스타트업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된 성장의 한계로 캐멀 방식을 채택해서 장기적인 수익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닥친 지금도 라임 스쿠터와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소비자간(B2C) 스타트업은 유니콘 방식을 버릴 수 없다. 결국 어떻게든 확장해야만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멀 방식에 집중하면 기존 시장에서 변화를 끌어 낼 수 없고 천천히 말라 죽게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제 위기 속에서 플랫폼 기업은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추가 투자를 받기 위해 목을 매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스타트업은 영원할 거란 믿음이 시장에 존재한다. 그래서 규모가 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급속히 줄고 있는 상황에도 블리츠스케일링에 성공한 기업과 유망 비즈니스 모델의 초기 스타트업에는 오히려 투자가 늘고 있다. 수많은 성공 캐멀과 유니콘을 기대한다. 언제나 우리의 희망은 스타트업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