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나의 데이터를 값있게 써 줄 수 있는 마이데이터를 기대하며

[전문가기고]나의 데이터를 값있게 써 줄 수 있는 마이데이터를 기대하며

월급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월급통장이 비워지긴 하지만 엑셀에 예·적금, 연금, 증권계좌 잔액을 한 줄씩 정리하는 것은 소소한 재미였다. 그런데 이 작업을 그친 것이 올해 초였다. 몇 초 만에 원 단위까지 집계된 자산 현황과 금융성적표까지 받아볼 수 있는 마이데이터서비스가 골라 쓸 정도로 다양해진 덕이다. 대부분 전체 재무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지만 한두 개 이상 앱을 설치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고도 말한다.

상당수 마이데이터서비스 기획자들을 만나 보면 이런 딜레마로 고민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으로 차별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용자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이용자는 서비스 간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해 가장 애용하는 금융회사나 빅테크에서 출시한 서비스만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왜 이런 사업 모델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초기의 기록이나 기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 교통통신부가 의뢰해 2014년에 발간한 백서 '마이데이터, 인간 중심의 개인 데이터 관리 및 처리를 위한 북유럽 모델'은 마이데이터 철학이 가장 잘 정리된 초기 자료다.

또한 유럽연합(EU)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신용정보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2차 개정안의 전송요구권과 본인신용정보관리업, 개인정보관리전문기관과 관련된 개정 배경을 통해 그 핵심 모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보 주체의 권리를 위임받아 대리 행사를 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권리행사 역시 서류 등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표현되어야 실효성을 띨 수 있다. 마이데이터사업자가 정보 보유처로부터 데이터를 가져올 때 전송요구서를 정보 주체로부터 받아 이를 근거로 대신 조회하거나 철회토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외 신용정보법에서는 개인이 정보수집에 동의한 사실을 철회하거나 마케팅 목적의 연락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도 맡길 수 있다. 머지않아 마이데이터서비스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제공 동의를 일괄로 철회하거나 철회 대신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날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의 체계적 관리 도구다. 금융 마이데이터는 대부분 계좌번호, 계약 단위 등으로 이미 체계화되어 있지만 앞으로 일반 개인정보로 전송요구권이 확대되면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체계화해서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데이터 원형은 같더라도 이용자는 수집한 데이터를 각자 원하는 행태로 관리하고 싶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구입 재원을 예금 두 개와 적금 한 개로 만들고 있는 사람은 세 개의 통장을 하나로 묶어 총액을 관리하거나 온라인 쇼핑몰로부터 전송받은 구매 내역을 공산품과 식료품으로 구분해서 보관한 뒤 나중에 활용하고 싶은 요구도 있을 수 있다. 사업자가 정해 놓은 획일적 틀이 아닌 컴퓨터 폴더처럼 정보 주체가 데이터 분류 기준을 정하고, 큐레이션할 수 있는 유연한 도구가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셋째 정보 최종소비처가 아닌 중개자로서의 역할이다. 두 번째 역할과 관련지어 수집된 데이터를 마이데이터사업자가 활용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수집한 데이터를 정보 주체가 허용한 곳으로 전달하거나 활용 기업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수집한 주식 매매 이력 데이터에 투자진단 스타트업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열어 주면 사고판 시점을 분석해서 투자 행동을 교정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의류 목록을 원하는 기업에 정보 주체가 전송해 주고 그 대가로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이때 정보 주체인 개인은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고려하여 정보 제공과 이용을 중단시킬 권리가 마치 스위치처럼 구현되길 기대할 것이다.

개인정보법 2차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공공 외 일반 개인정보까지 전송요구권이 확대되어 데이터를 제공할 기업과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이 폭증할 것이다. 양측을 연결해서 데이터가 잘 흐르도록 고속도로를 닦는 것은 중계기관 역할이고 그 위에서 기업의 이익이 아닌 정보 주체 의사와 이익에 따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고, 분명한 대가를 돌려줄 수 있는 데이터 활용처를 많이 연계한 플랫폼형 마이데이터서비스가 선택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이런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될 때 정보 주체는 의심 없이 데이터산업의 성장도 지지할 것이다.

김흥재 코스콤 마이데이터중계센터 팀장 khj932@kosc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