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디지털 금융과 금산분리 제도

이성엽 고려대 교수
이성엽 고려대 교수

데이터, 플랫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대전환은 금융 영역에서도 디지털 금융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금융상품 거래가 비대면·디지털화하는 것은 물론 가상자산·대체불가토큰(NFT) 등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상품이 출현하는 등 금융업의 사업 모델과 영업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금융 현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금융과 비금융이 서로 접근하면서 융합하고 협력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경쟁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 금융거래와 디지털 금융상품 출시를 주도하는 핀테크·빅테크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비금융 사업자의 금융 진출이 가속되고 있음과 동시에 기존 금융사업자도 통신, 전자상거래 등 다른 산업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금융과 비금융 분야가 상호 접근하고 융합하면서 금융과 비금융 간 경계가 흐려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비금융 분야와 달리 진입·퇴출 규제, 건전성 규제, 영업 규제, 감독 검사 규제 등 광범위한 상시적 규제를 받는 기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 요구이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금융회사와 그 외 산업군의 회사가 상대방의 업종 소유를 금지하는 원칙이다. 금융당국은 비금융 분야의 리스크로부터 금융 분야의 안전성 유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결합으로 말미암은 경제력 집중 방지, 금융업 본업 전념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 등 목적으로 금산분리를 시행하고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는 인터넷 은행 특례법(최대 34%)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4%까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금융의 산업과 금산분리 규제는 크게 행위, 업무범위, 소유, 진입 등 규제로 구분된다. 은행업에 대해 각각의 규제를 살펴보면 행위 규제는 특정인에 대한 신용공여 금지 등 특정 행위를 사후적·구체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이다. 업무범위 규제는 은행이 비금융 업무를 영위할 때 금융위원회 신고를 요하는 등 부수 업무 규제를 의미한다. 소유 규제는 은행의 비금융회사 한도 초과 출자 금지와 같은 비금융업에 대한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 진입 규제는 은행업에 대한 인가방식의 규제를 의미한다. 은행들은 이 가운데에서도 업무범위 규제와 소유 규제의 지속적 완화를 요청해 왔다.

금융법은 금융업무를 고유 업무, 겸영 업무, 부수 업무로 구분하고 있다. 고유 업무는 업종별로 핵심 기능에 해당하는 업무, 겸영 업무는 원칙적으로 다른 업종의 금융 업무, 부수 업무는 업종별 고유 업무에 부수하는 비금융 업무이다. 부수 업무 규제와 관련해 은행법 제27조의2 제1항은 '은행은 은행 업무에 부수하는 업무를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 은행 업무에 부수하는 범위 내에서 은행의 비금융 업무 영위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은행법에 열거되어 있지 않은 업무를 부수 업무로 영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금융위에 신고해야 하고, 사전 신고를 받은 금융위는 신고 업무의 부수 업무 해당 여부 등을 판단해 신고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사실상 허가와 유사하게 신고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는 은행의 부수 업무 해당 여부를 판단할 때 은행 고유 업무와의 관련성을 기준으로 활용해서 고유 업무와의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부수 업무를 영위할 수 없다. 다만 그동안 금융당국은 고유업무와 연관성이 없더라도 이른바 규제샌드박스라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제도를 이용해 한시적으로 비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인 '리브모바일'과 신한은행의 배달앱 '땡겨요'가 그런 사례다.

자회사 출자 규제의 내용을 보면 현행 은행법에선 은행이 은행 관련 업종이 아닌 회사에 15% 넘게 출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또한 은행의 자회사로 가능한 업종을 은행업감독규정에서 15개 금융 관련 분야로 한정하고 있다.

[ET시론]디지털 금융과 금산분리 제도

이런 금산분리 규제 완화 요청에 부응해 지난 11월 16일 금융위는 금융안정 유지 등을 위한 금산분리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금융산업이 디지털화와 빅블러 등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부수 업무 및 자회사 출자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는 크게 보면 현행 인수 가능한 업종을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되 업종을 확대하는 방식인 1안과 제조업·건설업 등 상품 제조·생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전면 출자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에 더해 위험 총량 한도를 설정하여 비금융업 리스크를 통제하는 방안인 2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위험 총량 한도란 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전체 비금융 자회사에 대한 출자 한도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디지털 기술이 금융과 비금융에 활용되는 현실을 고려하고 이종산업 간 융·복합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산분리 제도의 개선은 가능한 한 넓고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점에서 2안과 같이 네거티브 규제 방식 도입이 타당해 보이며, 특히 부수업무 규제는 완전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자회사 출자 제한 역시 폐지하는 방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도 개선으로 인한 위험은 출자 한도 규제,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차이니즈월 규제 등을 통해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금융혁신은 금산분리로 인해 금융과 비금융 분야가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금융회사가 금융규제법의 프레임 속에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받아 왔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개별적 허용 없이는 새로운 혁신 노력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물론 금융당국으로서도 리스크 관리와 혁신 지원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 분리·독립 등 구조적 규제는 최후 수단이 되는 것이 타당하며, 초기의 강력한 분리 규제도 융합과 효율성 관점에서 필요하다면 완화되는 것이 타당하다. 금융당국은 부수 업무 규제, 자회사 소유 규제와 같은 금산분리 규제를 개혁함으로써 금융업의 혁신 노력을 과감히 지원하고 이를 통해 금융회사는 진정한 디지털 금융의 변화 주도자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이성엽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직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고려대 로스쿨에 개설된 데이터, AI법 전문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고 금융위 혁신금융심사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을 거쳐 총리 소속 데이터정책 콘트롤타워인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현장 경험과 법, 정보통신기술(ICT), 데이터 분야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