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유임 vs 경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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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대기업의 2023년도 정기 임원인사가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LG·현대자동차에 이어 이달 들어 SK·삼성 그룹 등도 사장급을 포함한 인사를 실시했다. 이제 일부 후속 임원 인사, 보직 변경, 조직 개편 등만 남겨두고 있다.

이들 기업의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안정된 기반 위에 내년을 준비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인사 발표에 앞서 산업계와 언론이 예상한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존 최고경영진과 조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다가올, 아니 이미 가시화된 경제 침체 국면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대기업 임원 인사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유임'이 빠지지 않을 듯하다. 인사 기사를 다룬 언론 지면에서 '경질'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굵직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대부분 유임이었다. 일부 기업은 하반기 들어 실적 하락세가 두드러졌음에도 현 CEO 손에 쥐어진 운전대를 빼앗지 않았다.

'최장수 CEO' 타이틀을 내려놓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처럼 예외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8년 동안 회사를 지속 성장시킨 성과를 감안하면 올해 실적 부진과 관계없이 '용퇴'가 어울리는 케이스다.

주요 기업이 최고경영진 유임을 택한 것은 그만큼 '복합위기'로 불리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흔한 말로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랐다. 경영진 교체에 따른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본 것이다.

물론 혹자는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기존 장수를 고집하는 것은 패착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않은 장수라면 시나 때와 관계없이 과감하게 교체하는 것이 승리 공식이라는 것이다.

둘 다 맞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에 대한 선택이다.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를 언제 교체할 것인가다. 선발투수에게 마운드를 좀 더 맡길지, 구원투수를 투입해서 패전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할지 문제다.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치면 이미 형세는 기울어진 뒤여서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구원투수를 섣불리 마운드에 올리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단 국내 주요 기업들은 교체 카드를 미뤄 놓았다. 아직 몸도 풀리지 않은 구원투수를 이른 시점에 투입하기보다는 지난해부터 찬찬히 준비해 온 현 경영진에 힘을 실었다. 공교롭게도 국내 전자산업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 모두 1년 전 인사 때 CEO를 교체했다. 결과론이지만 실적이 좋을 때 새로운 경영진을 투입, 안정적인 준비 기간을 뒀다. 그 사이 새 경영진은 1~2년 뒤 변수에 대응할 시간을 벌었다.

2023년은 모든 기업에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어느 경제 관련 보고서에서도 밝은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기업 역시 몸을 잔뜩 움츠린다.

유임된 최고경영진의 활약이 요구되는 2023년이다. 올해 미리 준비해 놓은 전략과 자원을 바탕으로 내년의 위기를 슬기롭게 돌파하길 바란다. 그래야 한국 경제 역시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1년 뒤 대기업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경질'이 아닌 '유임'이 키워드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이호준 전자모빌리티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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