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49)업무 매뉴얼과 혁신 관계

[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49)업무 매뉴얼과 혁신 관계

Let's make things better! 우리말 번역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이다. 사소한 것을 챙겨서 품질을 높이자는 뜻이다. 휴대폰 통화버튼 위치, 식당 화장실 청결, 친절한 고객응대 등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작은 차이를 발견해서 개선하고 매뉴얼로 실천하면 최고 품질이 나온다. 1969년 미국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방치하고 관찰했다. 사람들은 타이어 같은 부품을 훔쳐 가더니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자 자동차를 부쉈다. 그 거리를 중심으로 범죄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에 착안, 1982년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정치학자 조지 켈링은 '깨진 유리창 법칙'을 만들었다. 자동차의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대중에게 법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을 주어 큰 범죄로 이어진다. 1994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슬럼가와 지하철 낙서를 지우고 쓰레기를 치웠다. 가벼운 범죄도 처벌했더니 중범죄까지 없어졌다.

기업은 업무 매뉴얼을 제정하고 임직원을 교육한다. 품질을 유지하고 손실을 줄이며 업무 속도와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임직원 개인 역량에 의한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레스토랑 체인업체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주 업무다. 고객응대 및 대화법, 화장실 청결, 직원 위생, 식자재 신선도, 메뉴 레시피 등 모든 것을 매뉴얼로 작성해서 관리한다. 작은 문제점 하나조차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고객을 묶어 두고 있다.

업무 매뉴얼에는 문제가 없을까. 2009년 1월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 에어웨이스 항공기가 새 떼와 충돌해 이륙 2분 만에 모든 엔진이 멈췄다. 체슬리 설런버거 기장은 글라이더처럼 활강해서 허드슨강에 착륙했고, 승객 150명 전원이 구조됐다.

관제사의 지시는 상대적으로 착륙이 쉬운 라과디아 공항으로의 회항이었다. 사고 조사에서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매뉴얼대로 했다면 회항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복잡한 매뉴얼을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 35초를 추가하면 회항에 실패하는 것으로 나왔다. 매뉴얼은 완벽할 수 없다. 매뉴얼이 분량이 많고 복잡하면 매뉴얼을 만든 사람을 면책시켜 줄 수 있지만 비상사태에서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도 매뉴얼은 필요하다. 미리 교육과 학습을 많이 해야 한다.

매뉴얼을 만들 때도 주의해야 한다. CEO가 디테일하게 살펴야 하지만 CEO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직원은 몇이나 될까. CEO의 주관이 매뉴얼에 깊이 박히는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매뉴얼이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가게에 자주 가지 않는다. 커피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내려주는 작은 커피 가게를 좋아한다. 물론 맛의 일관성이 없을지 몰라도 신선하고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 가게도 연구소에서 커피 맛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맛의 통일성 확보가 우선이고, 고객을 만나는 현장 직원의 창의성을 높이진 못한다. 매뉴얼에 따라 로봇처럼 일하게 만들고 현장 혁신이 일지 않는다.

지나친 친절을 강요하는 매뉴얼도 문제다. 북유럽을 여행했을 때 마트에 들른 적이 있다. 계산대 직원이 불친절하고 무뚝뚝했다. 지인에게 물었더니 거기선 물건을 팔 뿐 감정을 팔진 않는다며 고객이 왕이라면 마트 직원도 절반 정도는 왕이라고 한다.

과도한 업무 매뉴얼이 임직원을 생각 없는 노동자로 만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창의력과 혁신도 학습 및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현장 직원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어야 한다. CEO와 임원들이 만든 매뉴얼을 무조건 강요하진 말자. 직원들이 스스로 매뉴얼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설런버거 기장은 매뉴얼과 현장 판단의 조화 및 균형을 기하고, 부기장의 의견을 청취했다. 생각이 많은 디지털 일상에서도 필요한 지혜이고, 혁신의 열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