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한국 스타트업의 과락 과목을 돌아보자

[GEF 스타트업 이야기]한국 스타트업의 과락 과목을 돌아보자

시험에서 '과락'은 평균이 아무리 높더라도 한 과목이 최하 기준치 이하인 경우 자격을 얻지 못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공무원시험이 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가 세계적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 과락 요소를 제시하며 협회와 기자·국민을 설득하고 결국 월드컵 4강을 이룬다.

축구의 승리를 이루는 요소로는 선수 개개인의 기술역량, 스피드, 전술, 자신감, 상대분석, 응원과 열정, 연습량과 팀워크, 불안 억제력, 의사소통 및 책임감 등이 있을 수 있다.

히딩크가 간파한 한국 축구의 과락 요소는 후반 10분을 남겨놓고 무너지는 체력에 있었다. 히딩크의 진단은 명확했다. '체력 없이는 정신력도 없다.' 히딩크는 “한 경기에 180번의 순간 동작이 나오는데 정상 맥박으로의 평균 회복 속도가 유럽의 우수 선수들은 30초다. 그 안에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선수들이 러닝 후 정상 맥박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4분이다. 회복력이 받치지 않고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라며 체력훈련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히딩크는 늦은 회복력으로 피로도가 누적돼 후반으로 갈수록 뛸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 즉 바로 과락 요소를 찾아낸 것이다.

히딩크가 제시한 한국 축구의 과락 극복을 위한 핵심성과지표(KPI)는 '정상 맥박으로 돌아오는 30초'였다. '오대빵'(5:0) 감독이라는 오명을 감수하고라도 월드컵 직전까지 체력 향상을 통한 순간 회복력을 높이는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KPI를 제시하고 선수와 협회·기자·팬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타트업계에도 히딩크의 지혜가 필요하다. 창업자, 기업가정신, 자본력, 시장성, 사회적 가치, 수익모델, 경쟁사, 비즈모델, 마케팅, 보유역량, 구성원, 글로벌 가능성, 핵심기술(특허), KPI, 경영성과지표(BOI)라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한국 스타트업 발전에 가장 심각하게 인지되지 못하는 치명적 요소는 무엇일까. 과락 수준의 가장 취약한 요소를 든다면 단연코 'KPI'다. KPI는 아이템 설계 때부터 시제품을 통한 최소기능제품(MVP) 제작 및 린 스타트업 운영에서 목표가 되는 숫자다. 히딩크의 '순간 회복력 30초'와 같다. 사업계획서에 KPI가 부족하게 되면 가상소설이 된다. 매출, 데이터 양, 회원 가입 수가 KPI가 아니다. KPI는 미래가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준이다. KPI만으로 시장 가능성이 보여야 한다. KPI는 투자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핵심 요소다. KPI로 글로벌 가능성이 점쳐지고, 수익모델이 설계되어 가치평가가 이루어진다. BOI가 현재의 한 시점에 대한 성과라면 KPI는 성장률, 방문율, 재판매율, 확장성, 사용률, 회전율, 반응도 등이 변화되는 성과다.

그러나 현실은 3년 이상 된 기업의 가치평가 기준인 BOI로 스타트업의 평가 기준이 설정돼 운영되고 있다. 아무리 미래가치를 대변하는 KPI를 제시해도 투자자나 평가자들은 매출이나 실적을 보여 달라고 한다. '묻지 마 100만'이라 해서 100만 회원이면 1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을 정도다. KPI 설계에 대한 교육도, 인지도도 부족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이 우매함이 한국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은 시드 투자나 정부지원 사업을 통해 MVP를 제작하고, 목표로 하는 KPI를 시장에 제시하고 검증받아 양산 및 마케팅을 위한 시리즈 투자를 유치하는 메커니즘을 갖는다. 매출이나 흑자라는 BOI에 얽매이지 않고 KPI라는 과락을 줄이는 시스템으로 나아간다면 지금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은 더욱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가 위축되어 위기감이 감도는 이 시기에 정부지원기관, 투자자, 스타트업 모두가 KPI의 가치를 돌아보기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