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5년 연속 3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서서히 둔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나이키는 새로운 경영혁신 전략을 발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나이키의 경쟁 상대를 닌텐도와 애플로 규정한 사례다.
아디다스 같은 운동화 경쟁업체가 아니라 뜬금없이 게임회사나 컴퓨터 회사를 설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이 운동을 하려면 집 밖에 나가야 하는데 게임에 정신이 팔리면 나가지 않아서 운동화 매출이 줄어드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이렇게 동종업계의 평면적 점유율 경쟁이 타 업종의 고객 시간 점유율 경쟁으로 바뀌고 있는 사례는 지금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전방위적 디지털전환 파급효과로 생산자-소비자, 소기업-대기업, 온라인-오프라인 간 경계가 융화되면서 산업·업종 간 경계가 급속히 사라지는 현상을 '빅블러(Big Blur) 현상'이라고 한다. 한때 인기를 주도하던 MP3 플레이어나 디지털카메라는 스마트폰이 흡수했다. 극장의 영화 관람객 수요층은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가져가고 있다.
집에서 혼자 하던 비디오 게임은 '배틀 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온라인 게임으로 옮겨감에 따라 얼마나 많은 멀티 사용자를 흡수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된 지 오래다.
카드사나 전통 금융사가 제공했던 서비스는 IT 회사의 결제 시스템이나 비대면 인터넷 뱅킹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다.
이 모든 중심에는 급격한 변화와 그 변화를 잘 이해하고 학습해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민간 분야에서 발 빠르게 시장 경계를 허무는 사이 공공기관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도 조금씩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청와대를 방문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해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질문에 “인공지능(AI)은 인류 역사상 최대 수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며 교육·정책·예산 등 AI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제안했다.
이후 2020년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AI을 만나다'라는 행사에서 한국판 뉴딜의 중심을 디지털 뉴딜로 정의하고 핵심축으로 AI 분야 경쟁력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손 회장은 또 지난 2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 1.2배, 미국 1.8배 성장할 동안 한국이 3.7배나 성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초고속 인터넷에 대한 과감하고 시의적절한 투자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반도 안보 상황과 인구 절벽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통한 변화의 바람에 초고속 인터넷 투자 때처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다.
최근 정부는 '신성장 4.0 전략-3대 분야 15대 프로젝트'라는 국가성장 전략 과제를 발표했다. 초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미래기술 확보와 디지털전환, 전략산업 초격차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체계 개편과 협력 및 과감한 규제혁신 등 인프라 정비가 시급한 만큼 이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혁신의 허들을 넘어서고 있는 AI,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는 반도체, 디지털 강자만이 지배할 수 있다고 하는 우주산업 등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정보통신기술(ICT) 10대 이슈로 선정된 신산업 분야는 이제 글로벌 패권 경쟁의 전장으로 확대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다 함께 융성하고 윤택한 삶을 이루기 위해 '경제는 있되 경계는 없는 세상'이 성큼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김형태 성균관대 인공지능기업협력센터 기획본부장 kht0715@skku.edu
-
김동성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