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90〉과학기술부문계획 5개년 계획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5월 7일 청와대에서 신병현 부총리로부터 제5차 경제사회개발부문 보고를 받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5월 7일 청와대에서 신병현 부총리로부터 제5차 경제사회개발부문 보고를 받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정부는 앞으로 과학기술 진흥과 과학두뇌 양성에 주력하겠습니다.”

1981년 10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서 남덕우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1982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했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전자공업과 기계 등 기술집약적 산업을 수출주도산업으로 육성하고 경공업도 대외경쟁력이 있는 업종 중심으로 지원을 계속하겠다”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기술지도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앞으로 과학기술 진흥과 기능인력 개발에 역점을 두겠다”면서 “우수한 과학두뇌 양성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이공계 대학원을 확충하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해외연수를 확대해 연구 의욕을 진작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민간 기업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과학기술 교육에서 기초 과학과 실습교육을 강화하고 전문대학 기술교육을 내실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 진흥과 혁신이 국가 경쟁력의 요체라는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전 대통령의 회고록 증언. “경제 전쟁은 곧 과학기술 전쟁이었다. 과학기술이 낙후한 나라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국제 현실이다. 경제적 종속은 군사적, 정치적 종속관계보다 더 무섭다.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려면 선진 과학기술을 따라잡아야 한다. 내가 늘 강조한 ‘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명제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였다.”(전두환 회고록)

전 대통령은 이런 신념에 따라 1982년부터 시작하는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2~1986년) 과학기술 부문에서 과학기술 혁신 드라이브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정부 주도 경제성장 방식이었다.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작성해 7차까지 시행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 계획은 막을 내렸다.

정부는 5차부터 명칭을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변경했다. 경제와 사회발전 전반을 포함한다는 의미였다. 경제기획원이 이 계획 작성을 주도했다. 정부가 이 계획을 확정하면 각 부처는 세부 시책을 수립해서 집행했다. 5개년 계획은 국가 운영의 5년 청사진이었다.

전 대통령의 회고록 발언. “1980년대 들어 선진국들이 ‘기술보호주의’를 강화했다. 단순한 기술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첨단기술을 배경으로 한 기술집약적 산업 구조로 개편해 근원적인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기술개발의 자립화를 통해 첨단기술을 우리 스스로 개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다.”

경제기획원은 1980년 7월 각 부처에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작성지침을 보냈다. 과학기술처의 경우 △연구개발의 효율적 추진 △민간부문 과학기술 투자의 주도적 확대 △과학기술 인력의 대량 양성 △기초과학의 적극 육성 등 위주로 계획안을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제기획원은 부문별로 모두 25개 실무계획반을 구성했다. 과학기술처도 과학기술실무계획반을 운영했다. 계획반에는 과학자, 학계, 연구계, 공무원 등이 참여했다. 경제기획원은 각 부처의 부문별 계획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주관으로 매주 경제사회정책협의회를 열고 내용을 가다듬었다.

경제기획원은 수시로 전 대통령에게 부문별 중간보고를 하고 대통령 지시사항과 각계 의견을 5개년 계획에 반영했다. 경제기획원은 이렇게 만든 5개년 계획안을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1981년 8월 중순 대통령 재가를 받아 최종 확정했다.

8월 21일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안정과 성장을 바탕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제2 도약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1982년부터 시작하는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신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정부는 비교 우위산업 구조 전환을 위해 기술혁신과 고급인력 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며, 반도체·전자·정밀화학 등 핵심기술 산업 진흥에 주력할 것”이라면서 “전자산업 고도화와 기계공업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10월 29일 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과학기술부문계획을 발표했다. 과학기술처는 “기술 도약을 위해 내년부터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설치하고 신기술에 대한 해외 합작투자를 통해 반도체, 컴퓨터, 유전공학 등 첨단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처는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정보산업 육성 △연구개발 활동 기반 강화 △연구기술 인력 개발 △ 기업 기술개발 촉진 △핵심전략기술 토착화 △기초연구와 공공기술 개발 △원자력 기술개발 △산업설비 용역 산업 육성 △국제기술 협력 강화 △과학기술 풍토 조성 등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처는 그해 12월 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과학기술부문계획을 책자로 발간했다. 이정오 장관은 발간사에서 “이 계획은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선진국 기술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국제 간 기술경쟁 속에서 정부와 과학기술계·산업계·학계가 혼연일체가 돼 범국가적 기술 드라이브 정책 의지를 구현해 달라”고 당부했다.

과학기술처 김성철 당시 정보계획국장의 말. “이 계획은 국가기술 개발 역량을 결집해 고급인력을 대거 양성해서 핵심전략 기술을 토착화하고, 과학기술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해 제2의 기술 도약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정보산업 육성=미래 지향적인 창조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국산화와 이용을 촉진하고, 컴퓨터 표준화와 안전대책을 마련한다. 한글코드와 한국 자판, 컴퓨터 프로그램을 표준화하고 국산컴퓨터 보급 촉진을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컴퓨터 활용을 확대한다. 1986년까지 정보처리 인력 6420명을 양성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전산개발센터를 집중 육성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수출전략 산업으로 발전하도록 전문 개발 업체를 육성한다. 정보 생산과 분석 가공, 기술 제공 등 범국민적인 유통체제를 확립하고 데이터통신을 현대화한다. 시스템 관련 기술을 개발 보급해 시스템 기반을 구축한다.

△연구개발 활동 기반 강화=정부 출연연구기관 기능을 재정립한다. 한국전자기술연구소는 전자부품·반도체·컴퓨터 기술 개발,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전기와 통신기술 개발 기능을 각각 강화한다. 연구소 중심의 연구소 운영체제를 확립하고 연구소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대학연구소를 육성하고 연구기관별 협조체제를 구축한다.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해 연구환경을 보강한다. 공업소유권 제도를 현대화하고 품질관리와 기술혁신 운동을 전개한다. 과학기술 투자를 국내총생산(GNP) 대비 1981년 0.95%에서 1986년 2%로 확대한다.

△연구기술 인력 개발=과학기술자와 기능직을 집중 양성하고, 해외 기술연구를 확대하며, 해외 고급두뇌를 유치·활용한다. 이공계 대학과 공업전문대 교육을 강화하고 직업훈련을 확대한다. 기술존중사회와 기술인력이 승진 등에서 우대받는 풍토를 조성한다.

△기업 기술개발 촉진=현장 중심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지원하고, 출연연 연구원의 1인 1사 책임 지도제를 도입하며 세제와 금융혜택도 준다. 선진기술 도입을 촉진하고 이를 국산화한다.

△핵심전략기술 토착화=반도체, 컴퓨터, 정밀화학, 기계공업 등 기술개발을 위해 1986년까지 총 5508억원을 투입한다. 이 기간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과 기초 소재 기술을 개발하고, 컴퓨터 부품과 소프트웨어도 개발한다. 기계공업 고도화 기술을 개발하고 선진국과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기초연구와 공공기술 개발= 재료공학, 유전공학, 자동차 제어공학, 컴퓨터 등 첨단기술 분야를 중점 육성한다. 자원 에너지 기술과 기상예보 기술을 개발한다.

△원자력 기술개발=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발전용 핵연료 기술을 개발하고 원전건설 기술도 1986년까지 80%를 국산화한다. 원자력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원전발전 기술을 개발한다.

△산업설비 용역 산업육성=산업설비 용역 국산화율을 1986년까지 50% 이상 높이고 이 산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

△국제기술 협력 강화=첨단기술 분야에서 선진국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확대한다.

△과학기술 풍토 조성=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전개하고 새마을조직을 통해 농어촌의 기술지도 보급에 나선다.

5공화국 정부의 과학기술부문계획은 제2 기술 도약을 위한 야심 찬 설계도였다. 특히 기술진흥확대회의와 정보산업육성은 정보화시대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