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영역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한 정부 관계자가 고심 끝에 한 말이다. 지난해부터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 가전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전략을 검토해 왔다. 차세대 가전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부터 수요를 끌어올릴 부흥 전략까지 다각도로 살펴봤다. 현재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뾰족한 아이디어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 전략의 당위성을 설명할 ‘명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가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년 연속 글로벌 TV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처음으로 글로벌 생활가전 시장에서 매출·영업이익 선두에 올랐다. 코웨이, SK매직 등도 세계 곳곳에서 가전 강국을 지탱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코로나 특수가 사라지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엔데믹으로 가전이 아닌 다른 곳으로 소비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글로벌 경기침체는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정부가 가전 발전 전략을 고민한 것 역시 이때부터다. 세계 1등 유지를 넘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TV 등 전통적인 가전을 넘어 스마트한 기능을 바탕으로 한 차세대 가전 개발과 수요 진작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에 정부는 중소 가전사를 중심으로 수출 지원과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친환경 가전 개발, 소비 활성화를 위한 구매 지원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이 구체화됐지만 결국 마침표를 못 찍고 있다. ‘왜 대기업인 가전 업체를 위해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다.
정부는 가전 산업을 지원해야 할 명분부터 찾고있다. 우리나라 가전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중소기업의 혁신 성장에 발판이 돼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해답은 소비자에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개별 가전의 집합체가 아니라 상호 연결성에 기반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합 생태계가 되고 있다. 가전이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맞춤형 기능을 제안하고, 다음 행동까지 예측해 다른 가전을 작동시키는 구조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다양한 외부 서비스까지 결합할 수도 있다. 가령 개인 건강 상태에 따른 가전 작동 모드를 최적화하거나 차 안에서도 집 안의 다양한 가전을 제어하는 기술 개발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가전산업도 발전했지만 소프트웨어(SW) 역량 역시 뛰어나다. 전통적인 가전 산업 발전 구상에서 벗어나 온라인콘텐츠, 헬스케어, 모빌리티, 에너지 관리 등 다양한 혁신 스타트업과 가전산업을 연계, 새로운 생태계를 구상하는 발전 전략의 접근법이 필요한 때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