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랜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ORIA)가 우여곡절 끝에 내달 출범한다. 지난해 6월 창립 발의한 지 1년여 만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오픈랜 생태계 조성에 중추적 역할을 할 협의체에 거는 기대도 상당하다.
그런데 협의체를 이끌어 갈 대표의장사 선출을 놓고 잡음이 만만치 않다. 창립총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누가 대표의장직을 맡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기업마다 의장사가 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삼성전자·LG전자·에이치에프알 등 의장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 중에 선뜻 나서는 곳이 없다.
주된 이유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초대 의장이 갖는 상징성과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 오픈랜 산업 육성 의지가 크다보니 책임감이 막중하다.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사이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실행력을 가진 기업을 찾기도 쉽지 않다. 장비간 호환성이 핵심인 오픈랜 기술 특성상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보니 기업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수요를 발굴하는 일도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통신사는 장비제조사가, 제조사는 통신사가 맡아야 한다며 서로 떠넘기는 구도가 이어지며 출범 일정도 계속 늦어졌다. 결국 대표의장 없이 8개사가 공동의장단을 맡아 순번제로 돌아가며 의장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연임 없이 1년마다 바뀌는 순번 의장제는 사실상 총회를 주관하는 역할만 할 뿐 상징성과 운신의 폭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픈랜 생태계 활성화에 강력한 드라이브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협의체 출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당초 협의체 참여가 예상됐던 40여개사 중에 가입 의사를 밝힌 곳이 24개사에 그친 상황에서 선봉에 나설 기업마저 없다면 초기 생태계 육성에 힘을 싣기 어렵다.
개방형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진화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6세대(6G) 이동통신 시대에도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오픈랜 생태계 조성은 필수다. 그러기 위해선 민관협의체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증 단계를 넘어 수요처 확보와 상용화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내외 기업·단체 간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도 오픈랜 폴리시 콜리션(ORPC), 텔레콤 인프라프로젝트(TIP) 등 다양한 오픈랜 협의체 중심으로 생태계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출발 역할은 이통사가 해줘야한다. 국내는 오픈랜 관련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판매할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활성화에 한계가 있었다. 오픈랜이 상용화되면 이통사는 특정 제조사 장비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회사 통신 장비를 혼용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한 기지국 구축이 가능하다. 이통사가 판로 확보를 위한 수요 발굴과 시장 형성 구심점 역할을 해야한다. 차세대 통신을 선도하기 위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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