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첨단 패키징, 소부장 국산화부터

권동준
권동준

“사실상 국산화 사각지대입니다. 전공정과 견줘 핵심 소재 해외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죠.”

반도체 패키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현황에 대해 물으면 업계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산 제품이 없으면 국내 반도체 패키징 공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 소재가 ABF다.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 아지노모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ABF)'으로, 회로 간섭 없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절연 소재다. 아지노모토가 독점하고 있는데, 2021년 반도체 공급 부족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그 외 버퍼 코트·재배선 재료, 신타링 페이스트, 구리도금액 등 주요 반도체 패키징 소재도 국산화하거나 국내 수급에 항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일본산이 많고, 특허로 중무장된 것들이다. 최근에는 중국도 반도체 패키징 소재 시장에서 입김이 강하다. 압도적 원재료 생산 능력을 앞세운 결과다.

반도체 패키징은 기업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이다. 반도체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고 칩 성능을 끌어올릴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중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막대한 예산을 반도체 패키징에 투입하기로 했다. 대만은 TSMC 중심의 강력한 반도체 생태계를 앞세워 패키징 역량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주도권을 잃었다는 일본조차도 반도체 패키징 투자에는 진심이다. TSMC 패키징 공장을 유치하기도 했다. 특히 탄탄한 소부장 기술력은 일본 반도체 패키징 도약의 근간으로 주목받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패키징 소재의 높은 외산 의존도는 우리에게는 치명적 약점이다. 언제든지 주요 소재 공급 국가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지정학적 위기가 확산,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는 더욱 위태롭다. 국가 간 반도체 패키징 경쟁이 치열한 만큼 수급난 위기는 언제나 상존한다.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 위기의 여파는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때 이미 학습했다.

결국 꾸준한 국산화 노력 없이는 상황을 타개하지 어렵다. 소재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요 후공정업체(OSAT)가 적극적으로 국산 소재 개발에 협력하고 실제 활용 범위를 넓혀야한다. 그래야 소재부터 패키지 완제품까지 전주기에서 우리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허점으로 끊임없이 지적받는 '생태계'부터 보완하는 것이다. 기업 간 협력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정책 지원도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다행히 반도체 패키징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이 준비 중이다. 5000억원 규모로 예비 타당성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 R&D 사업이 우리 반도체 패키징 소부장 경쟁력을 높이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