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 환경을 잃고 시간을 얻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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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상당수는 현재 직면한 환경문제를 단순한 '오염'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탄소 배출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의 생태계 파괴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환경문제를 쉽게 과소평가한다.

이러한 환경문제가 우리의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면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환경문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전 인류의 일상생활 기준인 시간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환경문제로 인한 지구 변화의 예측 불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 스크립스 해양학 연구소 소속 덩컨 애그뉴 연구팀은 1990년 이후 극지방 얼음의 손실이 지구 자전 속도에 영향을 미쳐 시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우리가 사회 통념적으로 사용하는 24시의 개념은 매우 정밀하게 움직이는 지구를 근본으로 한다. 지구는 태양을 기준으로 8만6400초마다 한 번씩 회전하는데 이러한 지구의 자전 주기, 즉 천문 현상을 기준으로 한 것이 '세계시'다.

다만 지구의 자전 주기는 지구 내부 구조의 움직임이나 지구와 가까운 달의 중력으로 인한 바다의 복잡한 운동성으로 인해 항상 일정하지 못하다.

이로 인해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한 시간은 오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원자시계다. 원자시계는 1960년대부터 시간과 지구 자전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표준화된 측정 도구로 세슘 원자의 진동 주기를 기준으로 한다.

원자시계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지구 자전과 원자시계 측정치를 합쳐 보완한 '세계협정시'를 국제 표준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계협정시는 원자시계 측정치를 기준으로 24시간을 정의하고, 세계시와 비교해 그 차이를 보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시와 원자시계 간 차이가 누적되면서 0.9초 이상 차이가 날 때 세계협정시에 1초를 더하거나 빼는 윤초를 적용하는 것이다.

윤초의 개념은 1972년에 처음 적용되기 시작했다. 윤초는 도입 이후부터 2016년까지 총 27차례 적용됐는데, 적용된 윤초는 모두 1초씩을 더하는 양의 윤초였다.

이후 근래 들어 지구 자전 속도는 점차 빨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지구는 태양을 기준으로 8만6400초마다 한 번씩 회전하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빨라진 지구 자전 속도로 인해 하루가 짧아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특히 2020년에는 지구 자전 시간이 8만6400초보다 짧은 경우가 28번 이상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2020년 7월 18일의 경우는 지구가 8만6400초 대비 1.4602밀리초 빠르게 회전한 것으로 관측됐다.

지구 자전 속도를 관찰하는 과학자들은 당시 이 같은 지구 자전 속도에 따라 해마다 원자시계 측정치와 세계시 간 오차가 축적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2026년에는 윤초 도입 이후 처음으로 24시에서 1초를 빼는 음의 윤초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애그뉴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지구 자전에 변수를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연구팀은 지구온난화로 녹은 극지방 얼음이 지구 자전축에 영향을 끼치면서 자전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의 질량이 양옆으로 퍼진 현상이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현상이 앞서 전망됐던 2026년 음의 윤초 시행에도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짐에 따라 음의 윤초는 2026년이 아닌 2029년께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음의 윤초가 미뤄질 것이란 주장이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간 설정이 필요한 상당수의 컴퓨터 프로그램은 양의 윤초를 가정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의 윤초가 적용될 경우 해당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모든 시설의 시간 재설정이 필요하다. 음의 윤초 적용이 미뤄지면서 이로 인한 혼란 또한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과학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 자전 변화의 본격화를 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한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은 지구가 환경문제로 인해 그 변화의 폭을 더욱 크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