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복지부 '패싱'

“우리의 대화 상대는 보건복지부가 아닙니다. 여당, 대통령실에서 대화를 요청하면 응할 의사가 있습니다.”

최근 의학대학 교수 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이 기자들과 만나서 한 말이다. 이들은 여기에 더해 정부 입장을 브리핑하는 장·차관까지 경질을 요구했다. 개원의로 구성된 대한의사협회는 이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인다.

의사 단체의 '복지부 패싱'은 대통령 등 최상위 의사결정권자를 끌어내 이슈를 확산하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의 의도 속에는 이번 이슈가 정책이 아닌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애초에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만큼 복지부와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마저 가시화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마저 가시화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의사단체들이 이번 사태를 정치적 목적을 가진 행위로 규정하면서 복지부는 설자리가 급격히 좁아졌다. 복지부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제시한 근거는 모두 '총선'을 위한 끼워 맞추기식 숫자로 낙인찍혔다. 지속적인 대화 요청에도 의사단체들은 힘없는 주무부처와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태도를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 '복지부 패싱'을 만든 것은 대통령과 여당 책임이 크다. 지난달 중순만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 모두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 완수 의지를 강조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돌연 윤 대통령이 '전공의 처벌의 유연한 적용'을 시작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적극적인 대화 추진'을 강조하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여당에서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전공의 파업에 기계적 법 징행을 강조한 복지부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발언은 의·정 갈등 해소에 단초 역할을 하기보다는 주무부처 설자리를 더욱 좁히는 결과만 낳았다. 또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사단체에게 협상 대상이 누구인지, 이번 이슈가 정책이 아닌 정치라는 것을 명확히 각인시켰다.

사태 해결을 주도하는 주무부처 힘을 빠지게 해서는 안된다. 주무부처 권위가 곧 정부 전체의 힘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