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에 대한 법적 책임과 관련된 문의를 자주 받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수사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유사 사건의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차주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이며, 전기차의 결함이 인정된다면 제조사가, 스프링쿨러의 관리 부실로 인한 확대 손해가 인정된다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상당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율주행 사고는 누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
자율주행은 통상 5단계로 구분되며 각 단계별로 책임 분배를 달리한다.
레벨 1은 하나의 주행 보조 기술이 적용된 단계, 레벨 2는 다양한 주행 보조 기술이 조합된 단계, 레벨 3은 고속도로와 같은 특정 조건에서의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 레벨 4는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단계, 레벨 5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단계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가 '반자율주행'이라 부르며 사용하고 있는 주행보조시스템은 대부분 오토크루즈 기능, 차선유지 기능 등 2가지 이상의 주행 보조 기술이 조합된 레벨 2단계에 해당한다.
레벨 2에서의 사고 발생 시 민사상 운행 책임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차량 소유주가, 제조물 결함 책임은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제조사가 각각 지게 된다.
이 경우 피해자는 차량 소유주와 제조사 양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실무적으로는 차량 소유주의 자동차 보험으로 먼저 보상받고, 보험사가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형사 책임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완전 자율주행시스템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율주행차의 운전자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직접 운전 요구에 지체 없이 대응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으므로, 사고 발생 시 주의 의무 위반으로 운전자가 형사 책임을 지게 되며 이는 레벨 3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운전자의 개입(운전)이 없는 레벨 4 이상에서의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의 주체이다.
즉 레벨 3 이하의 사고에서의 법적 책임은 '운전자'가 누구인지가 쟁점이었으나 운전자가 없는 레벨 4 이상의 사고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운전자가 없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운전자에게 묻기는 어려우므로, 자율주행으로 인한 운행이익을 누리는 운행자(소유자, 보유자)가 자신이 소유, 보유한 차량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이와 더불어 제조사도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조물 책임이 성립되려면 결함의 존재와 결함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입증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제조물책임법에 대한 보완 입법이 필수적일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도 자율주행 사고의 일차적 책임이 자동차 소유자 또는 보유자에게 있다고 보고 있으나, 제조사나 자율주행시스템 제공자의 책임에 대한 논의 또한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22년 말 레벨 3 자율주행 기술(HDP·Highway Driving Pilot,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상용화를 예고했던 현대차그룹은 상용화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자율주행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감당해야 하는 법적 문제나 이미지 실추 등에 대한 부담감이 상용화 시점 연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법과 제도의 정비 없이 자율주행 산업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해관계자들은 법적 문제나 사업의 불확실성 때문에 도전과 혁신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기술의 진보도 법과 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자율주행 시대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시작해야만 한다.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minha-khm@naver.com
저자소개: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는 정보기술(IT)·지식재산(IP)·소프트웨어(SW) 기업의 리스크관리(RM) 및 경영전략 전문 변호사이다. 교육부·전자신문 IT교육지원캠페인 자문위원,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인력양성사업 자문위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인식개선사업 자문위원, 경상북도청 지식재산전략 자문위원, 안동시청 지식재산관리 자문위원,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 해외투자 및 저작권사업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