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근로시간, 업계 수용이 답이다

전세계가 반도체 전쟁중인 상황에 우리는 반도체법을 놓고 안에서 우리끼리 씨름중이다. 반도체 복합클러스터를 만들어 집중 육성하겠다던 경기 용인지역 소재 반도체 중소업체들이 반도체분야만이라도 노동 시간 유연화를 정치권에 요청했지만, 번번이 돌아온건 여야간 비토(veto) 뿐이다. 밖에선 수출장벽이, 안에선 소통장벽이 쌓였다.

정부와 여당이 11일 반도체 연구개발(R&D)분야 만큼은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 제한을 풀고 12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의 특별연장근로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야당이 반도체특별법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아예 빼도록 주장하면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 특별법 자체가 무산될 처지에 놓이자 마지막 배수진을 친 것이다.

사실, 반도체기업 연구실에 주 52시간만 불이 켜지게 강제했다면 우리 반도체산업은 현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들이 밤을 새서라도 연구결과를 내놓겠다는 그 악착같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의 기술선진국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 반도체는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168시간 전부를 투입해서라도 기술격차를 지키고, 취약분야는 더 따라잡아야하는 실정이다.

반도체특별법이 담고 있는 반도체기업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 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정부 지원 강화와 일자리 확대, 첨단기술 투자 확대와 산업경쟁력 제고 같은 핵심 조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해 대만, 중국 등 거의 모든 국가가 노동시간 규제를 갖고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추진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묻따(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도체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당정 간담회에 참석한 한 반도체기업의 “근로시간 규제로 인해 연구개발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부서 간 협업 저해, 근로시간 최대 한도를 채운 경우 강제 휴가 등 연구에 몰입하는 문화가 약화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는 말을 정치권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 생존의 갈림길에서 근로시간 타령을 할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만큼은 반도체업계의 특별연장근로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갈길 바쁜 K-반도체산업의 앞길을 더이상 특별법 논란과 노동시간 문제로 허비해선 안된다. 반도체 기술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노동시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신명나게 근로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해야한다. 거기서 얻는 국익의 크기가 노동시간 제약으로 얻는 국익의 크기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