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도 못하면 우리나라에 '제왕적 대통령'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장을 지낸 박상철 경기대 부총장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1987 헌법'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권한은 줄이고 국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민(국회)이 끌어내리는 한국 정치사의 불행을 끝맺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이 대통령 독재와 체육관 선거를 끝내고 국민이 직접 자기 손으로 뽑는 '대통령 직선제'에 집중한 나머지, 유신헌법의 틀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기긴 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게 비단 대통령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행 헌법은 독재를 방지하고자 5년 단임제를 채택하는데, 대통령을 당선 이후 견제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이 없다”고 했다.
미국과 같은 4년 중임제라면 중간선거(대선)를 통해 4년 임기에 대한 국민 심판을 받을 수 있는데, 5년 단임제에선 이러한 견제 장치를 하는 제도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현 정권의 심판 무대가 되는데, 야당이 압승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은 그대로다.
개헌 방향에 대해선 4년 중임제가 의원내각제보다 어울린다고 봤다.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열망이 컸던만큼, 의원(정당)이 수장을 뽑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국민 선호가 크다는 뜻이다.
박 부총장은 “내각제는 정당 중심의 정치 체제를 요구하지만, 한국의 정치 문화는 직접 민주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권력 분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국회 권한을 상대적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총장은 “미국과 달리 한국 국회는 예산 편성 권한이 부족하며, 정당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강하다. 따라서 국회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민주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권력자의 결단이다. 임기 초반에는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는 소위 미래 권력이라 불리는 유력 대선주자가 개헌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부총장은 “현직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는 개헌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정국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라면서 “임기 막바지 레임덕이 오면 그때야 개헌 카드를 꺼내는데, 이때는 또 미래 권력이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최근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사태로 국민의 개헌 요구가 강해졌다. 이번이 개헌의 적기”라면서 순차적 개헌을 제안했다. 4년 중임제로의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해 제왕적 대통령제부터 끝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권 조항이나 세부사항을 함께 논의하다간 좌초될 우려가 크다고 봤다. 또 개헌 과정에서 국민의 직접 참여를 확대해 개헌 정당성과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박 부총장은 올해 초 故문홍주 박사가 1996년 미국 헌법 연구를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학회는 그간 미국 판례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한편,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우리 헌법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박 부총장은 학회 조교로 시작해 학회장을 거쳐 이사장이 됐다. 그는 “한미 간 법률·정치적 교류를 강화하는데 중심을 두고 학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