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84〉예측은 끝났다 이제는 적응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지난주,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정부 구조 축소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약 6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된 이번 시위에서 시민들이 외친 것은 단지 정책 반대가 아니라, 물가 상승을 동반한 불확실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이었다. 미국의 대대적인 관세 정책은 경제를 넘어 지정학, 외교, 문화, 기술, 사이버보안 등 다층적 시스템을 동시에 건드리는 변수로 작동하며, 이는 단순한 혼돈을 넘어선 '결정 불가능성'의 영역에 다다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결정의 결과를 미국 정부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간 기업과 투자자는 더 이상 '예측'이라는 전략적 전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전지적 시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분명해졌다.

현실에 대한 판단의 당위성을 지탱해 온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활용 사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생성형 AI를 통해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타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트렌드를 보라. 사용자들은 이를 즐기며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지만, 원 창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16년, 생성형 AI의 이미지 생성에 대해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을 느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용자는 AI가 만들어낸 현재의 결과물에 만족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용자의 '앎'이 점점 피상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서 출발하는 자기 정체성과 소유감마저 흐려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결국 우리는 미국의 관세 정책처럼 이미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변화가 어떤 파장을 낳을지 판단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 역시 이러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고려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적응'이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알 수 없는가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AI의 산업 적용은 우리에게 빠르게 계산하고, 예측하고, 실행까지 제안하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금 많은 리더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예측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이다. 너무 많은 예측이 오히려 무엇이 '의미 있는 신호'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조직이 이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변화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변화는 대개 조용히, 미묘하게 시작되며, 숫자가 아닌 현장의 조짐에 귀 기울이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특히 경계와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을 조직 내에 마련해야 한다.

또, 하나의 사실을 다양한 시각에서 읽어낼 수 있는 해석의 역량이 중요하다. 같은 보고서를 읽고도 서로 다른 전략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견을 억누르기보다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문화가 조직의 유연성을 강화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조직일수록 방향 전환이 빠르고 유연하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이 조직의 정체성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내부 기준이 필요하다. 외부 신호에 휘둘리기보다는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지를 먼저 아는 조직만이 단기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방향성과 의미를 중심에 둔 판단을 할 수 있다. 명확한 의미 중심을 가진 조직은 빠른 적응뿐 아니라, 일관된 전략적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세 가지 중 단 하나라도 선택해 적용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신호를 감지하고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부터 적응은 시작된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