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빅파마, 美 리쇼어링 본격화…'생산기지 재편' 움직임

행정부별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금액(5월 8일 기준), 자료=키움증권
행정부별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금액(5월 8일 기준), 자료=키움증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줄줄이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단순한 정책 권고 수준을 넘어, 행정명령을 통한 제도적 강제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 생산기지가 재편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내 의약품 제조 촉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주요 내용은 △FDA의 자국 생산 제조시설 승인 절차 간소화 △환경보호청(EPA)에 공장건설 가속화 명령 및 미국 내 제조 공장 승인 기간 단축 △해외 공장에 대한 수수료와 검사비 인상, 비준수 공장 공개 검토 △원료의약품(API) 출처 보고 의무화 △해외 제조시설 대상 기습 방문 전환 등이다. 바이오 의약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처방약 생산공정이 대상이다.

이런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초부터 강조해온 '미국산 의약품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줄지어 미국 제조 생산시설 투자 확대를 발표했다. 그 금액 역시 역대 최대 수준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지난 9일 총 3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새로운 시설 3곳을 건설하고 기존 시설 3곳은 개선해 제조 및 연구개발(R&D) 역량을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기존 210억 달러에 110억 달러를 추가한 액수다. 길리어드는 2028년까지 직접 고용이 최소 800명 증가하고, 간적접으로는 2200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일라이릴리, 로슈, 머크, 존슨앤존슨(J&J), 노바티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도 미국 내 생산 투자 방안을 발표한 상태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2월 향후 5년간 최소 27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4개의 새로운 제조시설을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슈도 향후 5년간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만2000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로슈는 기존 제조시설을 확대하고, 약 90만 제곱피트(약 8만3600㎡) 규모 차세대 비만치료제 생산시설도 짓는다. J&J는 향후 4년간 550억 달러를 들여 4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BMS는 5년간 4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연구 및 제조 입지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빅파마들의 미국 내 대규모 설비 투자는 트럼프의 '해외 생산시설 미국 이전'(리쇼어링) 정책 추진 속에서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 가격 인하 뿐만 아니라 수입품에 관세 부과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글로벌 제약사들은 생존을 위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리고 있다.

의약품은 미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수입 규모는 2126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아일랜드,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비중이 크며, 한국은 39억8000만 달러(전체의 1.87%)로 수입국 순위 16위다. 특히 수입하는 한국산 의약품 중 94.2%가 바이오 의약품이다.

관세 부과에 대비해 제약사들은 재고를 비축하면서 지난 3월 미국 의약품 수입이 급증했다. 3월 의약품 수입액은 500억 달러로 2024년 전체 수입액의 23.5%에 해당한다.

허혜민 키움증권 제약바이오 연구원은 “관세 영향은 올해보다는 2026년부터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리쇼어링 관련 정책 시행으로, 미국 제약·바이오 시장은 혁신 신약 R&D 강화보다는 제조 투자 확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밝혔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