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수용한 남아공 '백인' 난민… 트럼프 “이중잣대? 우연일 뿐”

1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난민 '아프리카너'. 사진=AFP 연합뉴스
1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난민 '아프리카너'. 사진=AFP 연합뉴스

강경한 이민 정책을 내세웠던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을 난민으로 수용해 이중잣대 논란에 휩싸였다.

12일(현지 시각) AP 통신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너'(Afrikaners·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 정착민 후손) 59명은 이날 미국 정부가 비용을 부담한 전세기를 타고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을 통해 미국 땅을 밟았다. 당초 예정된 49명보다 10명 더 많은 이들이 미국에 도착했다.

이날 현장에는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 트로이 에드거 국토안보부 부장관이 직접 공항까지 나와 난민을 맞았다.

랜도 부장관은 “여러분들이 성조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면서 “여러분 대부분은 농부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이 좋은 씨앗이 있다면, 그것을 외국 땅에 심어도 씨앗은 꽃을 피울 것이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꽃을 피울 것”이라고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난민들에 대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로 인해 그들(아프리카너)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분리 정책) 이후 남아공에서 백인 농부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며 다음 주 남아공 지도부와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그간 난민들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 불법 이민자 추방은 물론, 정치적 불안 등을 이유로 그동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미국에 체류하도록 했던 중남미 국가 국민의 체류 허가에 대한 취소도 추진하는 등 강경한 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가운데 백인 난민들을 수용하고 나서자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백인인 것은 우연”이라며 “그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는 내게 아무 차이가 없다. 백인 농부들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땅이 남아공에서 몰수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다르게 남아공에서 살해된 희생자는 흑인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020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남아공 농장에서 살해된 225명의 희생자 가운데 101명은 농장에 고용돼 일하는 전현직 노동자로 대부분은 흑인이었으며, 백인 농부는 53명이라고 지적했다.

남아공 정부도 '백인 소수 민족인 아프리카너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미국 측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반발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아프리카너들은 남아공에서 가장 부유하고 성공적인 사람들 중 하나”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정보(백인이 아파르트헤이트의 피해자라는 주장)는 거짓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아공의 폭력 범죄율이 매우 높고, 아프리카너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백인 농부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남아공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만, 피해자가 백인뿐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