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특별한 전시를 준비했다.
성균관대학교(총장 유지범)는 박물관의 60년이라는 시간을 회갑 잔치로 풀어낸 전시 이후, 수집의 기원과 컬렉션의 원류를 살펴보는 제44회 특별기획전 '벽치광작癖痴狂作-수집과 컬랙션'전을 성균관대학교박물관(관장 김대식) 기획전시실에서 2025년 6월 12일부터 2026년 3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몰입한 사람들'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며,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취미와 수집, 창작의 에너지를 박물관적 시선으로 조명한다.
전시의 출발점은 조선 서화사의 결정적 분기점이 된 자료,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자료의 실물을 국내 최초로 일반에 공개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문화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재단되던 시기에, 위창(葦滄) 오세창은 '근역서화징'과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석묵', '근묵'을 편찬해 조선 서화사를 스스로 기록해냈다. 그 기반이 됐던 것이 바로 오세창의 부친 오경석이 남긴 이 방대한 메모 기록이었다.
역관 가문 출신인 오경석은 1853년부터 1875년까지 13차례나 연행에 참여하며 조선과 중국의 서화를 수집했고, 이를 차곡차곡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천죽재차록'에는 당시 서화에 대한 감식, 필적 분석, 고증학자의 견해뿐 아니라, 고려·조선 서화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 추사 김정희와 박제가에 대한 비판적 견해, 사적인 탁본 경위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근역서화징'에는 실리지 않았던 원본의 사유는 위창이 의도적으로 생략한 '더 솔직한' 기록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시는 '벽癖'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벽은 '어딘가에 과하게 미친 상태'를 뜻하며 유교적으로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조선 후기,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 지식인들은 벽을 오히려 '창조의 원천'으로 보았다. "사람에게 벽이 없다면 그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박제가의 선언은 몰입의 미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전환점을 상징한다.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은 그간의 수집과 연구에서 이러한 '박물관의 벽癖'을 실천해왔다. 유교와 선비문화를 향한 깊은 파고들기를 바탕으로, 유물 하나하나의 의미와 맥락을 복원하고 그 가치를 대중과 공유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박물관적 태도를 형상화한 주요 소장품과 함께, 서화 수집의 미시사(微視史)를 구성하는 오경석의 부채, 편지, 목록류, 탁본 등이 소개된다.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몰입가들도 만나게 된다. 정조가 '간서치看書痴'라 부른 이덕무는 정리와 저술에 천착했고, '사기'의 '백이전'을 11만 번 넘게 읽은 독서광 김득신, 수천 자루의 붓을 닳게 한 서예광 추사 김정희도 그들이다. 이들의 삶은 오늘날 '덕후', '파고들기', '수집광'이라는 말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다시 묻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오늘날 '호작(好作)'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호작은 생존과 생산성을 넘어, 오로지 '좋아서' 만드는 행위이다. 직업과는 무관하게 밤새도록 바늘을 꿰고, 나무를 깎고, 인형에게 한복을 입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작의 결과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미적 감각과 감동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활자와 이를 위한 도구들, 한국 전통 복식을 입은 인형 시리즈 '꼬레고마', 디즈니 베이비돌에 한복을 입힌 전통 퓨전 작업, 남은 옷감으로 만든 바늘쌈지와 복식 소품 등, 자발적 몰입이 만든 다양한 창작물들이 소개된다. 이들은 '덕업일치'가 아닌 '호작질'로서 시작된 결과물이며, 공유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는 흐름을 상징한다.
'벽치광작癖痴狂作'은 수집과 몰입, 창작이라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대의 문화, 기억, 기록으로 진화해온 과정을 박물관적 시선으로 엮어낸 전시다. 특히, 오경석-오세창 부자의 수집과 정리벽은 문화 자립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김대식 관장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몰입의 태도야말로 가장 순수한 문화 창조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전시가 개인의 취향이 문화로 전환되는 감동의 순간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자신문인터넷 이금준 기자 (auru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