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협의체 8개 은행 참여…'주도권' 놓고 은행·핀테크 신경전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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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협의체에 은행이 속속 합류하면서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민간기업 참여 필요성에는 일정 수준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제도 설계의 초점은 참여 여부를 넘어 역할 분담과 주도권 구도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IM뱅크와 케이뱅크가 최근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 가입하면서, 기존 6개 은행(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수협은행)을 포함해 총 8개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협의체에 참여하게 됐다. 협의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기술 및 정책 대응을 함께 모색할 예정이다. 협의체에 핀테크 기업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향후 민간 기업 참여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류창보 오픈블록체인DID협회장은 “은행권이 자본력과 유동성을 바탕으로 금융 안정성을 담당하되,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생태계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협의체에 참여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이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KYC) 등 규제 대응 체계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를 금융권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실제 일본이 은행·신탁회사에 한해 발행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안정성을 중시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핀테크 기업 주도는 기술 민첩성과 글로벌 연동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경업 오픈에셋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라며 “해외 민간 사업자와도 경쟁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의 역량과 금융사와의 협력 모델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에셋은 카카오의 크러스트 유니버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본부가 분사해 설립한 기업으로, 2023년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핀테크 기업은 퍼블릭 블록체인 연동, 사용자 중심 인센티브 설계, 디파이(DeFi) 및 국제 거래소와의 연계 등에서 앞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 기술력과 금융기관의 신뢰성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는 확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에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런 '역할 분담 모델'을 제도화하는 흐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싱가포르는 통화청(MAS) 규제 요건을 충족한 핀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지난 17일(현지시각) 상원을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법안에서 은행 외에도 연방 인가를 받은 비은행 기업을 발행 주체로 명시했다.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제도가 발행 자격을 금융기관으로만 한정할 경우, 해외에 비해 국내 기업들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며 “단순한 업종이나 자본금 기준보다는 준비금 적정성, 환매 대응력, 자산 보관·유통 안정성 등 실질적 요건 중심의 인가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치권도 논의에 가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와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내달 초 '비은행권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핀테크 기업 참여 필요성에는 금융권 안팎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참여 방식'에 초점을 맞춘 실질적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