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6년 만에 500건 아래로 하락했다. 지난해 발발한 의정갈등 여파가 이어진 가운데 투자 유치까지 어려워지며 임상진입 시도를 미루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시험 승인은 총 449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500건)과 비교해 10.2% 줄었다.

상반기 임상시험 승인이 500건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9년(442건) 이후 6년 만이다. 국내에선 2020년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임상시험이 활발해지면서 식약처 승인 건수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이던 2021년에는 상반기에만 619건의 임상시험이 승인됐다. 매해 증가하다 지난해 2월 의정갈등이 발발하며 전년 대비 10% 가량 줄었는데,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가장 많이 줄어든 영역은 임상 1상이다. 지난해 상반기 138건을 기록한 임상1상 승인은 올해 108건으로 21.7% 줄었다. 임상 3상도 전년도 99건에서 올해 93건으로 소폭 줄었다.
지난해 전체로 봤을 때 가장 크게 줄었던 연구자 임상은 올해 상반기 11건 늘어 총 42건을 기록했다. 연구자 임상은 주로 병원 내 의사들이 연구를 목적으로 신청한 임상시험으로, 병원 내 인력난이 심화되며 큰 타격을 입었다. 다만 올해 승인건수 증가는 지난해 기저효과일 뿐 2022년(57건), 2023년(58건)과 비교하면 여전히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상반기 임상시험 시장 위축은 의정갈등 여파 지속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면서 임상시험 수행 여력이 없었다. 실제 지난해 전체 임상시험 승인은 총 941건으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1000건 이하를 기록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부 전공의가 복귀했지만 여전히 병원 내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교수들의 업무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예정된 연구나 임상시험 계약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영역에 자본 유입이 막히고 있는 점도 임상시험 위축의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바이오·의료 업종 스타트업 신규투자 금액은 2797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2% 증가했다. 벤처투자가 소폭 늘었지만 투자심리 위축으로 상당수가 검증된 기업에 투자하는 등 유망 스타트업까지 투자금이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대부분의 바이오텍과 의료기기 스타트업은 투자금을 확보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는데,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의정갈등 해소를 강조함에 따라 분위기 전환이 기대되지만 당장 대형병원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임상시험 위축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선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본부장은 “현재 승인된 임상시험도 실제 진행되기보다는 기업 로드맵이나 계약, 투자유치 등을 위해 신청부터 해놓은 사례가 많을 것”이라며 “지난해와 비교해 병원 인력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투자심리도 위축된 만큼 하반기 임상시험 승인 규모도 상반기와 비슷한 분위기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