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에너지전환과 대륙붕 개발, 현실과 정책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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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은 전 인류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다. 우리나라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경제 육성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의 속도에만 매몰될 수 없는 현실적인 도전과제가 함께 존재한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전력 수요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 확산과 에어컨(AC, Air Conditioning) 수요 급증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IEA 장기 석유 수요 전망
IEA 장기 석유 수요 전망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급격한 AI 시장 성장 등에 의해 2022년 대비 2030년까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맥킨지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이 2024년 약 25GW 수준에서 2030년에는 80GW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AI뿐만 아니다. 기후변화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이때 AC도 향후 전력 수요 급증을 불러올 주요 원인 중 하나다. 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35년 AC로 인한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폭염과 함께 글로벌 사우스 개발도상국들의 AC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이처럼 AI와 AC를 비롯한 전력 수요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용 전력 수요까지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단순히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2024년 글로벌 재생에너지 성장은 둔화했고, 재생에너지 최대 투자국인 중국마저도 2024년 석탄 발전 신규 건설이 10년 내 최고에 달했다. 유럽 역시 현실적 대응으로 방향을 수정하는 분위기다. 영국 석유회사(BP)는 'Beyond Petroleum'이라는 슬로건으로 탈탄소화 에너지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최근 CEO를 교체하고 다수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철수와 함께 석유·가스 개발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IEA는 에너지전환 시나리오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에서 태양광·풍력이 25.9%,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는 4.4%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2050년에는 태양광·풍력의 비중이 19.4%로 줄고, CCUS 비중이 15.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하에서도 탄화수소(Hydrocarbon)의 일정한 역할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탄소 관리·제거가 가능한 CCUS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에너지 정책은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대응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장기적 안목의 에너지 안보 구축과 탄력적 에너지 공급 체계 및 최적의 에너지 믹스가 중요하다. 특히, 자원 빈국이자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 안보 전략이 요구되며 이의 핵심은 적절한 에너지 믹스와 에너지 자급자족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 땅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하는 것이다.

최근 중동 전쟁 등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되고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크게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요는 더 늘었다.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천연가스 개발을 안정적인 에너지전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가스 발전용 터빈 수요 폭증으로 현재 신규 터빈 확보에만 수년이 소요될 정도로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륙붕에는 여전히 미개발된 자원이 존재하며, 동해가스전의 성공 경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전 세계 어느 유전도 석유·가스가 한 번만 발견된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해가스전 생산 종료 이후, 후속 프로젝트인 동해심해가스전 개발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은 국가 자원 안보 차원에서 아쉬움이 크다. 비록 최근 첫 번째 탐사시추에서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대해 상업적 발견에 실패했지만, 아직 가능성 있는 유망구조가 많고 이번 시추 결과 분석을 바탕으로 역산과 석유시스템 모델링 등의 과정을 거쳐 성공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글로벌 메이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탐사 리스크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

동해 가스전은 11번의 시추 끝에 성공했고, 17년간 총 4540만배럴의 가스 및 석유를 국내에 공급했다. 동 사업 운영을 통해 석유공사는 자립적 탐사·개발·생산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국가자원 개발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림은 물론, 국가 에너지 안보에도 이바지해왔다. 또 이제는 기존 생산 인프라를 활용한 CCS 거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최대 유전이라 불리는 가이아나 리자 유전도 14번의 시추 끝에 결실을 보았다. 쉘(Shell)과 엑손모빌(ExxonMobil) 같은 석유기업들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업종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도 석유·가스개발이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산업임을 보여준다. 석유공사는 지난 4년간 연평균 1.14조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였고, 총 1.8조원의 차입금을 감축했다. 석유공사가 중심축이 되어 자원개발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우리 땅, 우리 바다에서 석유·가스 개발의 성공을 만들어가야 한다.

석유개발현장 CCS 기술 적용을 통한 탄소감축 기여
석유개발현장 CCS 기술 적용을 통한 탄소감축 기여

에너지전환은 친환경 슬로건만으로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한 부문,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도 없다. 차분하고 꾸준하게 에너지자원 확보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자원안보와 에너지전환, 이상과 현실, 기후위기 대응과 국가생존전략을 조화시키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필자〉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쉘에서 20년간 근무하며 글로벌 솔루션 아태본부장, 휴스턴 R&D센터 전문위원 등을 지냈고, 이후 SK이노베이션 기술원장과 CTO(기술총괄 사장)를 역임했다. UNIST 정보바이오융합대학장과 AI혁신파크 단장을 거쳐, 2021년 6월부터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맡고 있다. 세계석유총회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해외자원산업협회 회장, 한국CCUS추진단 이사장을 겸임하며 탄소중립과 자원개발 분야 정책 및 기술 혁신에 힘쓰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봉사대상, 2023년 대한경영학회 경영자대상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훈을 수상한 에너지·자원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