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와 미국 간 관세·무역 협상이 종료 시한을 하루 앞두고 전격 타결됐다.
우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는 각각 15%로 낮아졌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 규모는 3500억달러로 확정됐다. 또 농축산물 추가 개방, 디지털·IT 비관세장벽 철폐 등 미국 측 요구 사항을 상당 부분 방어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31일 미국의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관세·무역 협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에 적용되는 품목관세도 현재 25%에서 일본과 동일한 15%로 인하됐다.
양국은 특히 반도체·의약품 등 앞으로 부과될 가능성이 있는 품목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 '최혜국 대우'에 합의했다.
한국은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협상의 지렛대로 썼다.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업 전용 특화 펀드다. 선박 설계·건조, 기자재, 유지·보수·정비(MRO) 등 전 생태계에 투자한다. 미국이 한국 조선 산업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미국 조선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데 상당 부분 투입된다. 추가로 2000억달러 펀드는 직접투자·대출·보증을 모두 포함하며 반도체·바이오·원전·이차전지 등 전략 분야에 투입한다.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 규모가 실제로는 일본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한일의 대미 무역흑자가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 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실 투자규모는 일본(5500억달러)의 36%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합의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합의는 제조업 재건이라는 미국의 이해와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확대라는 우리의 의지가 맞닿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통상 협상의 핵심 품목이었던 쌀·쇠고기 등 농축산품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성과로 지목된다. 미국 측은 추가 개방을 거세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통상 당국은 한국이 이미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이고 농축산물 시장의 99.7%를 개방했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 측을 설득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을 책임진 미국 측 각료와 우리가 나눈 대화에 쌀·쇠고기와 관련한 개방 논의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X(구 트위터)에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완전히 개방할 것이며,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또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입법 철회, 인공지능 칩(GPU) 구매 등 디지털·IT 분야에서의 미국 측 요구 또한 최종 타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온플법은 협상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최종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고 GPU 구매 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주 내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 방안 등을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