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은 공공 행정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의 AI 기반 교통 관리 시스템, 영국의 공공 헬스케어 AI 챗봇 등 세계 주요국은 초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해 민원, 복지, 교통,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정부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자정부 성공을 기반으로 LLM 개발과 행정 적용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기술 중심 논의에 치우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LLM은 AI 정부의 '엔진'일 뿐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응용 서비스 없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복지 사각지대를 조기에 발견하는 AI는 사회보장 데이터를, 교통 신호 최적화 AI는 실시간 교통 데이터를 요구한다. 이들 서비스는 데이터 연계, 정책 조율, 사업 관리가 뒷받침돼야 작동한다. 단일 LLM으로는 다양한 행정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범용 LLM과 분야별 특화 AI(Vertical AI)를 병행 개발해야 한다.
AI 정부의 성공은 기술이 아닌 국민 체감형 서비스에 달렸다. 전자정부가 무방문·무서류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했듯, AI 정부는 '복지 신청 없이도 AI가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정부' 같은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오탐지 방지를 위한 데이터 익명화 기술 및 엄격한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
OECD 회원국 다수가 공공 서비스에 AI를 도입하며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Oxford Insights의 Government AI Readiness Index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영국은 AI를 공공 서비스 설계에 적극 활용해 국민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자정부, 공공안전, 보건복지 분야에서 AI 사업 예산과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AI 정부 구현을 위해 세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거버넌스 재설계다. AI 정부는 기술, 정책, 윤리, 인프라가 얽힌 복합 과제다. 단일 부처 주도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싱가포르의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 사무국처럼 대통령실 직속 컨트롤 타워와 부처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역할을 재정립해 데이터 공유와 정책 조율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AI 행정 윤리와 법제도 정비다. AI가 복지 수혜자를 선별할 때 데이터 편향으로 저소득층이 배제될 위험이 있다. 미국의 COMPAS 알고리즘 사례처럼, AI의 불투명한 의사결정은 공정성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공공 알고리즘 등록제, 윤리 심사 체계, 투명성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
셋째, 유연한 개발 생태계 조성이다. 기존 SI 방식으로는 AI의 민첩성과 확장성을 구현하기 어렵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부처 간 데이터를 통합하고, 목표 서비스 시나리오 기반의 선프로토타입 개발 후 제안요청서(RFP) 구체화를 통한 본서비스 개발, 우수 서비스 개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한 애자일 개발과 유지 개선, 법제도 및 행정절차 개선, 기술적 난제 해결 지원을 위한 민관합동 전문가 TF운영 활성화 등을 도입해야 한다.
중소기업 참여와 민간 전문가 유입을 위한 개방직위 확대도 병행해야 한다. 전자정부가 통합 서비스 플랫폼으로 국민 편의를 높였듯, AI 정부도 부처별 응용 서비스를 연쇄적으로 구현하는 통합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 AI와 교통 AI를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연계해 데이터 공유와 서비스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AI 정부는 '생각하고 돕는 똑똑한 정부' '함께 행복한 복지사회' '위험을 줄이고 일상을 지키는 정부'를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 기술, 사람, 프로세스의 대전환이 필수다. AI는 만능이 아니지만, 명확한 목표와 전략 아래 적용되면 막대한 공공 가치를 창출한다. 지금이야말로 전자정부의 성취를 넘어 K-AI 정부로 도약할 시점이다.
오강탁 메타빌드 전무·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okt@metabui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