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94〉AI 전쟁의 전략은 '당연함'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8월 25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의 xAI가 애플과 오픈AI를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소장은 iOS 차원의 챗GPT 통합과 앱스토어 랭킹·추천이 경쟁을 왜곡해 xAI의 챗봇 '그록(Grok)' 같은 대안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오픈AI는 '머스크의 지속적 괴롭힘'에 부합한다며 반박했고, 주요 매체들은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을 애플·오픈AI 협력과 앱스토어 노출 구조에 두고 있다. 접수 시점과 관할, 원고 주장과 피고 측 반응은 로이터가 확인했다.

맥락을 정확히 하자. 애플의 챗GPT 연동은 시스템 차원에서 호출되지만 사용자 동의에 기반한다. 애플은 공개 당시부터 권한 부여 시에만 시리(Siri)와 Writing Tools가 챗GPT에 질의, 응답하도록 설계했다 밝혔고, iOS가 다른 챗봇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록은 앱스토어 무료 생산성 애플리케이션(앱) 3위임에도 챗GPT 아래에 머문다고 전했다. 이 순위 구도와 OS 레벨 진입 경로의 비대칭이 겹치며, '첫 진입'의 힘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커졌다.

여기서 우리가 보려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당연함'의 권력이다. 부르디외가 말한 독사(doxa)는 장(field) 안에서 행위자들이 의심하지도, 문제 삼지도 않는 전제들, 즉 논쟁 이전의 세계를 뜻한다. 사용자는 사양표와 벤치마크를 꼼꼼히 비교하기보다 이미 '자연스러운 길'로 보이는 것을 택한다. 디폴트 호출 경로와 상단 노출은 바로 그 '자연스러움'을 설계하고, 그 설계가 곧 선택을 대신한다.

즉, 디폴트는 데이터의 배분이기도 하다. 기본값이 되는 순간 상호작용 로그와 운영 최적화의 자원 배치가 그 모델로 쏠리고, 그 쏠림이 다시 성능과 비용을 실제로 벌려 놓는다. '분배, 데이터, 성능'의 되먹임 고리가 독사를 공고화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보이는 것'은 단지 편리한 선택지를 넘어, 더 빨라지고 더 싸지는 현실 그 자체가 된다.

그러니 핵심은 설득이 아니라 전제다. '왜 이걸 쓰지?'라는 질문이 애초에 열리지 않는 상태, 그 상태를 먼저 점유하는 쪽이 시장을 선점한다. 따라서 공정성 논쟁의 중심도 품질 심사만이 아니라 전제 심사여야 한다. 무엇을 먼저 보이게 할지, 어떤 경로가 몇 번의 제스처로 열리는지, 그 설계 자체가 경쟁질서를 만든다.

이 관점에서 보면, 디폴트는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선택 이전의 배경'이 된다. 시리나 시스템 글쓰기 도구에서 챗GPT가 동의를 거치더라도 먼저 호출되는 설계는 다른 챗봇을 대체재로 위치시킨다. 앱스토어 상단 노출과 추천 섹션은 '위에 있으니 더 낫다'는 상징적 정당성을 덧씌운다. 반복 노출과 무의식적 호출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다시 독사를 강화한다. 그 결과, 성능이 약간 더 좋은 대안이 있더라도 '당연함의 바깥'에 놓인 것들은 실제 선택에서 지속적으로 뒤로 밀린다. 다만 이 효과는 맥락에 따라 깨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결과 책임이 높거나 규제가 두터운 과업, 예컨대 금융 결재, 의료 상담, 법무 검토에서 사람들은 기본값을 우회해 '전문성 경로'를 찾는다. 즉, 디폴트의 효력은 과업의 위험도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관련 기업들이 취해야 할 초점도 바뀐다. 모델 우열의 담론에만 몰입할수록 독사의 장에서 뒤처진다. 제품, 운영,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처음 보이는 것'을 어떻게 확보할지로 재배열돼야 한다. 시스템, 브라우저, 모바일에서 한 번의 제스처로 우리 서비스를 부르는 길을 마련하고, 계정 없이 써보는 경험과 기록의 무손실 이주를 기본 전제로 삼아 갈아타기의 마찰을 없애야 한다. 성능 지표와 별개로 세 가지 독사 지표인 첫 호출 비율(First-Invocation Rate), 상단 노출 체류시간(Top-Slot Dwell Time), '표준·권장' 언급 증가폭(Doxa Lift)을 함께 관리하면, 설득이 아니라 전제가 움직였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분쟁은 모델 대 모델의 수학적 승부가 아니라, 전제 대 전제의 사회적 승부다. 독사는 '선택'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보다 앞서 '무엇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판결의 향배와 무관하게, 향후 지형을 더 크게 흔들 변수는 운용체계(OS) 차원의 초기 선택화면 도입 여부다. 당신이 이 시장에서 정말로 확보해야 하는 것은 더 빠른 파라미터가 아니라 더 단단한 당연함이다.

그리고 그 당연함은 늘 조용하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승자를 만든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