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없는 예술가'로 불리는 영국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가 새 작품을 공개했으나, 등장 1시간도 되지 않아 가림막이 설치됐다.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왕립 법원 벽면에 그려진 이 작품은 판사가 피켓을 들고 있는 시위대를 법봉으로 때리는 모습이 묘사됐다. 이에 법원 측이 공개 직후 작품 철거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전날 오전 캐리 스트리트에 있는 왕립 법원 건물 일부인 퀸즈 빌딩 외벽에 뱅크시의 벽화가 등장했다.

1990년대부터 활동하는 뱅크시는 전 세계 도시 곳곳에 스텐실 기술로 작품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다. 작품을 그린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공식 웹사이트 등을 통해 작품을 업로드해 진품을 인증한다. 이날 그린 그림 역시 뱅크시 공식 계정에 올라왔다.
이날 벽화는 전통 가발과 판사복을 입은 남성이 피켓을 든 채 바닥에 쓰러진 시위자를 향해 법봉을 내리치는 모습을 묘사했다. 피켓에는 시위대에게서 튄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그려졌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친팔레스타인 단체가 불법 단체로 지정된 데 대해 항의하던 시위자 890명이 체포된 지 이틀 만에 등장했다. 뱅크시는 작품을 게시하며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이 판결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원 측은 벽화가 등장한 지 1시간 만에 대형 비닐과 금속 차폐막을 동원해 벽화를 가렸다. 작품을 촬영하려는 시민들이 모여들면서 경호원까지 동원돼 작품을 가리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BBC에 해당 작품이 곧 철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왕립 법원 대변인은 “왕립 법원은 국가 유산에 등록된 2급 건물로 원래의 성격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공개되자 여러 의견이 엇갈렸다.
노동당 상원의원은 “의회는 법을 만들고, 판사들은 그저 법을 해석할 뿐이다. 판사들이 시위를 탄압해왔다는 증거는 없다”고 작품을 비판했다.
반편 시위대 측은 “법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반대 의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뿐이다. 뱅크시 작품에서 드러나듯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빼앗으려하겠지만 우리의 결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