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인공지능(AI)의 국제 규범 수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임을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7번째로 기조연설에 나서 “첨단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는 '모두를 위한 AI'의 비전이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다음 달 대한민국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APEC AI 이니셔티브'를 통한 AI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AI의 파급이 범죄나 불평등 등 부작용도 낳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 규범 수립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AI 기술이 안보 역량을 결정하고 사이버 공격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시대, 우리는 이제 '보이는 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야 한다”며 “AI 시대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닌다면 기술 악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의 그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디스토피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러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높은 생산력을 동력 삼아 혁신과 번영의 토대를 세우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유용한 기반을 만들 수 있다”며 “내일 안보리 의장으로서 주재하는 공개토의 자리가 AI의 책임 있는 이용을 촉진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모두를 위한 AI' 비전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 대통령은 “AI가 주도할 기술혁신은 기후 위기 같은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중요하고 또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 등 국제사회의 공동의 과제와 관련해서도 주도적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지난 80년간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열어젖히고 인류의 존망이 걸린 기후 위기 대응을 선도해 온 유엔의 노력에 세계 각국이 화답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은 과학기술과 디지털 혁신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계속해 “올해 안으로 책임감 있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해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에 동참할 것”이라며 “2028년 칠레와 공동 개최하는 '제4차 유엔 해양총회'에서도 지속 가능한 해양 발전을 위한 실질적 연대를 구축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전 지구적 과제에 적극 대처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노력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인류 공동의 약속을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개발 거버넌스의 혁신도 주요 의제로 부각시켰다.
10년 전 유엔이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를 수립한 이래 국제사회가 빈곤 퇴치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여러 진전을 이뤄냈지만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의 개선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킨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개발 재원에 대한 수요는 지속해 늘어나고 가장 취약한 이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놓여 있다”며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자”고 역설했다.
그는 “글로벌 개발 거버넌스를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동시에 재원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하고 도약한 대한민국의 사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경색 국면인 한반도 정세의 개선 의지 또한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는 유엔 창설 80주년이자, 한반도 분단 80주년”이라며 “민주 대한민국은 평화공존, 공동 성장의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며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의 길을 일관되게 모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한 'E.N.D. 이니셔티브'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즉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굴곡진 남북관계의 역사가 증명해 왔던 불변의 교훈이기도 하다”며 “남북 간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했다.
비핵화와 관련해선 단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하고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우리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