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여당이 정부조직법을 수정하기로 결정하면서 임기 초반 국민주권정부(이재명 정부)가 야심 차게 내세웠던 금융정책 거버넌스 개편도 사실상 보류됐다. 여당 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금융 거버넌스 개편을 담은 내용이 빠지게 되면서 과거 여야가 특검법 수정안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두고 합의했던 수준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25일 국회에서 고위당정협의를 마친 뒤 “당정대는 신속 처리 안건으로 추진하려 했던 금융위원회 정책 감독 기능 분리 및 금융소비자 소비자보호원 신설 등을 이번 정부 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금융기관 개편과 관련한 9개 후속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추진도 함께 철회했다.
이로써 금융감독·정책 기능 분리를 골자로 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등 금융 관리·감독 거버넌스 개편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이날 정부·여당이 급작스레 이같이 결정한 이유는 정부조직법 통과 이후 금융감독위 설치 등 후속 입법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을 다루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는 공교롭게도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으면 애초에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원래 계획대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더라도 법안 통과에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한 의장은 “경제 위기 극복에 있어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 관련 정부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 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여당 내에서는 정부조직법이 과거 여야 합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대대적 개편이 이뤄지는 만큼 이에 따른 진통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지난 10일 특검 기간 연장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의 수정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금감원 설치 등과 관련해 야당이 협조하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당내 강경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특검법 수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게 나왔고 이후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이들을 설득하는 대신 오히려 여야 합의를 파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정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특검법 개정안 추진 과정 역시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지도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개별 입법을 추진한 탓이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협상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여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은 금융 거버넌스 개편 관련 정부조직 개편을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의총)를 마친 뒤 “이번에 (정무위 관련 내용을) 정부조직법에 담지 않는 대신 충분히 논의를 하는 걸로 얘기가 됐다. 논의 이후 협의해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