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한복판, 금융과 첨단산업 단지가 맞닿은 곳에 자리 잡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유리 외벽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KOSME)' 간판이 걸린 정문을 지나면, 한국 중소·벤처기업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석유부문 국내총생산(GDP)을 올릴 수만 있다면, 사우디는 어느 산업이든 과감하게 투자하려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형록 리야드 GBC 소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열기 속에서도, 그는 사우디가 지금 어떤 속도로 변화를 추진하는지 생생하게 전했다.
사우디는 한국의 20배, 수도 리야드는 서울의 2.5배 규모다. 인구는 약 3500만 명, 그중 35세 미만이 70%에 달한다. 김 소장은 “젊은 인구가 사우디 경제의 잠재력이자 인프라”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빠르게 늘고 있어 산업 곳곳에 파급 효과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사우디는 2016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발표한 '비전 2030'을 통해 석유 의존 경제에서 탈피, 첨단 제조업과 디지털 산업을 육성 중이다. 김 소장은 “'비전 2030'은 전략은 건국 100주년(2032년)을 맞이하기 위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전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현재 사우디는 국부펀드(PIF)가 주도하고, 국가개발기금(NDF) 등이 지원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10여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2030 리야드 엑스포', '2034 FIFA 월드컵', 매년 열리는 e스포츠 월드컵 등 글로벌 이벤트도 이어지며, 세계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이벤트 국가'로 변모 중이다.
파격적인 제도 개혁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외국인 100% 지분 법인 설립 허용과 내외국기업 동등대우, 해외 송금규제 완화, 행정처리 간소화, 세제 혜택 제도 신설 등 외국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흐름이 뚜렷하다. 동시에 시장 신뢰를 위한 부정부패 척결에도 적극적이다.

2023년 10월 문을 연 GBC는 사무공간과 회의실 제공, 행정지원 등 소프트랜딩 지원을 기본으로 법인 설립, 법률 자문, 라이선스 비용 절감 혜택 등을 제공한다. 김 소장은 “일반적으로 법인 설립에 최소 5~6개월이 걸리고 연 3000만원 이상이 들지만, GBC를 통하면 간단하고 저렴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리야드 GBC에는 15개 기업이 입주했으며, 7곳이 법인 설립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5곳은 이미 법인을 세웠다. 올해 초 AI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도 이 곳에서 둥지를 텄다. 입주 기업 중 뷰티 스타트업은 한국 중소벤처기업 최초로 '유통 라이선스'를 따냈고, 방산 장비 분야 기업의 경우 사우디 국영기업과 대규모 계약 체결 후 정상 납품하고 있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입주 기업들은 월 16만 원 수준(1년차, 2인실 기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독립 오피스와 회의실 등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사우디 투자부와 공동 운영되는 만큼 신뢰도 확보 효과도 크다. 김 소장은 “리야드 GBC는 단순한 사무공간이 아니라, '비전 2030' 전략과 한국 기업의 도전이 교차하는 교두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기회의 땅이지만 긴 호흡이 필요하다. 김 소장은 “사우디 사람들은 '노'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예스'도 아니다”라며 실제 의사결정권자를 찾아내는 안목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근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으로 단기간 고성장을 이루기도 하지만 실패 사례도 많다”며 준비 없는 진출의 위험성도 경고했다. 이어 “반대로 한국 기업은 사우디에서 호감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이를 잘 활용한다면 기회는 분명히 있다. 사우디는 한국 기업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문병준 주사우디대사관 대사대리도 현지 한국의 위상을 확인해줬다. 그는 “앞선 건설산업에서의 협력을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 월드컵 경험, 그리고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한국어로 말을 걸 정도로 친근감을 보이고 있고, 미국·유럽 등과 비교해도 탁월한 제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