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골목마다 자리한 오래된 가게들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세월의 냄새가 밴 공간이자, 세대를 이어온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정직한 손맛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해온 백년가게들은 이제 '우리 동네의 얼굴'이자 지역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온 광주의 '화정떡갈비'와 의정부의 '오뎅식당'을 찾았다.
◇ 세대를 잇는 맛, 화정떡갈비
1976년 광주 송정리 오일시장 인근에 문을 연 화정떡갈비는 한결같은 정성으로 40여 년을 이어온 집이다. 당시 생계를 위해 부모가 시작한 작은 식당은 돼지 뼈와 고기로 만든 떡갈비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시장 한켠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떡갈비 냄새는 어느새 광주의 명물이 됐다.
현재는 2대째 김성훈 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일을 거들며 손맛을 배웠고, “부모님의 노하우를 이어받되, 시대에 맞게 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세심하게 지키는 원칙은 단순하다. 메뉴를 늘리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맛'을 유지하는 것. 김 대표는 “입맛이 달라지더라도 기본 뼈대는 흔들리지 않는다”며 “신선한 재료와 매운 양념을 쓰지 않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손님과의 인연도 깊다. 해외 거주 단골이 귀국 때마다 일부러 찾아오고,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이어진다. 포장에 특별한 장식이 없어도 '선물용으로 꼭 사고 싶다'는 말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화정떡갈비는 2020년 '떡갈비 골목 최초의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타이틀보다 책임이 크다”며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맛있게, 더 모범적으로 가게를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사업가가 아니라 장사꾼”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체인점 제안을 거절하고 한 매장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꾸준한 손맛과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우리 동네의 자부심'이라는 이름 그대로다.
◇대한민국 부대찌개의 원조, 오뎅식당
'의정부'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은 단연 '부대찌개'다. 1960년대 미군 부대에서 흘러들어온 햄·소시지·베이컨으로 끓여낸 이 음식은 이제 전국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부대찌개 1호점으로 불리는 '오뎅식당'이 있다.
김민우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가게를 지켜봤다. 그는 “처음엔 어묵을 팔던 포장마차였는데, 지역 분위기와 시대 변화에 따라 부대찌개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름이 '오뎅식당'으로 남은 이유에 대해 그는 “상호 속에는 역사가 있다. 시대와 함께 전통이 된 흔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뎅식당의 철학은 간결하지만 쉽지 않다. 언제 찾아와도 '그때 그 맛'을 지키는 것. 김 대표는 “햄과 소시지, 베이컨 같은 가공육은 믿을 수 있는 공급처에서만 들여오고, 김치는 HACCP 인증을 받은 국내 업체에서 오뎅식당 전용으로 제조해 숙성한다. 김치의 맛이 국물의 깊이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대찌개의 원조로 자리 잡은 오뎅식당은 이제 의정부의 상징이 됐다. 방송과 잡지,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소개되며 '의정부 부대찌개'의 대표로 이름을 알렸다. 손님들이 “옛날 그대로다”라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2019년 백년가게로 선정된 오뎅식당은 인테리어와 위생 개선, 마케팅 지원 등 제도적 도움을 받아 경쟁력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롯데웰푸드와 손잡고 공동브랜드 '식사이론' 밀키트 제품 개발에도 나섰다. “백년가게라는 이름이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새로운 책임”이라는 그의 말처럼, 오뎅식당은 전통 위에 혁신을 더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오래된 가게가 아니라 좋은 가게로 오래 남고 싶다”며 “가족이 함께 찾는 편안한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이 만든 '우리 동네의 얼굴'
광주의 화정떡갈비와 의정부의 오뎅식당은 서로 다른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바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 그리고 정직한 마음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손맛은 단순히 오래된 식당을 넘어,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증거다.
백년가게는 한 세대를 넘어선 시간 속에 사람들의 기억을 품은 살아 있는 기록이다. '우리 동네의 자부심'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변함없는 정성으로 이어온 이들의 맛과 이야기는 앞으로도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러한 장인정신과 지역 정체성을 계승하기 위해 '백년소상공인 육성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업력 30년 이상의 점포 중에서 '백년가게', 업력 15년 이상의 제조업 숙련 소공인 중에서 '백년소공인'을 지정한다. 2018년 시작된 이 제도는 올해까지 8년간 총 2388곳(백년가게 1407곳, 백년소공인 981개사)을 지정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