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3년간 추진된 '글로컬(Global+Local) 대학 30' 선정이 마무리되고, 그 뒤를 잇는 라이즈(RISE: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지역 대학의 위상과 역할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단순한 교육기관이라는 틀을 넘어,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을 주도하는 지식 기반 플랫폼으로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정책적 선언을 넘어, 지역 사회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연구 성과를 논문이나 학회 발표에만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연구의 결과물이 지역 산업 현장과 사회 속에서 직접적인 변화와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지역 기업과 시민들이 그 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교육·산학협력이 재편돼야 하며, 이는 지역 대학이 실질적인 변화의 주체가 돼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전자파(Electromagnetic wave) 기술은 주목할 만한 분야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자파 기술은 거의 모든 첨단 산업의 기반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통신, 방위산업, 항공우주, 에너지, 바이오·의료, 스마트 모빌리티에 이르기까지 전자파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5G·6G 통신, 자율주행 레이더, 위성 통신, 무선 전력 전송, 전자파 환경 규제 대응 등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전자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자파 기술은 '보이지 않는 기술'이라는 한계 속에, 그 산업적 가치나 사회적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못해 왔다. 일반 국민들은 전자파에 대해 여전히 불안감을 갖고 있고, 그 위험성을 과장하는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전자파는 과학적으로 무해한 수준에서 잘 관리되고 있지만, 대중의 인식은 조심스럽고 민감하다. 이제는 이러한 인식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대중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함께 병행돼야 하며, 동시에 전자파 기술의 산업적 잠재력과 공공적 역할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 산업의 구조를 살펴보면 항공·우주, 조선·해양, 방위산업, 로봇, 에너지 등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 산업은 고주파·고출력·정밀 제어가 가능한 전자파 기술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역 대학은 단순한 이론 중심 교육을 넘어서, 해당 산업들과 직접 연계되는 응용 전자파 기술 연구와 전문 인력 양성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대학이 보유한 전자파 측정·시험 인프라를 지역 기업과 공유하는 개방형 시험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자파 무반사실, EMC 시험 설비 등은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고가 장비인 만큼, 대학이 이를 공동 활용 자원으로 운영하면 지역 산업의 기술 자립과 신뢰성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전자파 설계와 측정, 인증 등 실질적인 기술을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현장 밀착형 교육과정과 실습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 취업률 제고를 넘어, 지역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정확히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전자파는 기초과학과 응용 기술이 결합한 학제적 분야이기 때문에, 지역 내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정교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RISE 사업은 대학의 연구 역량을 지역 산업의 기술 혁신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므로, 전자파 기술 분야에서 그 효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대학은 이제 자체적인 전략과 자원으로 지역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기술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전자파 기술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산업의 신호를 전달하고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신경망과 같다. 이 기반 기술을 지역 안에서 키우고 자립시킬 때, 진정한 의미의 지역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컬 30과 RISE 사업은 단순한 대학 지원 정책이 아니다. 이는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 인프라를 하나의 생태계로 통합하여, 지역 대학이 글로벌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 산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가는 구조 전환의 시작이다. 전자파 기술은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지역을 혁신의 실험실로, 대학을 산업의 기술 거점으로 바꾸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재곤 경남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논문지 이사 jaegonlee@kyu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