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만에 어머니께"...1차 세계대전 참전병이 쓴 '유리병 편지'

1916년 8월 15일 출항 사흘 후 편집 작성
맬컴 네빌-윌리엄 할리, 가족 품에 전달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장으로 향하던 젊은 호주 군인의 편지가 100여 년 만에 가족에게 전달됐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ABC방송 등에 따르면 데브 브라운은 지난 9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에스페란스 근처 워튼 비치에서 가족과 함께 사륜바이크를 타고 쓰레기를 줍던 중 종이가 담긴 낡은 병 하나를 발견했다.

브라운은 “우리가 해변 청소를 자주하기 때문에 쓰레기가 한 개만 보여도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면서 “그래서 이 작은 병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호주 해안가에서 발견된 100년된 병 속의 편지. 사진=AP 연합뉴스/뎁 브라운

브라운은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병을 꺼내들자 그 안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바닷물에 젖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글은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이 병이 바다아래 모래에 묻힌 채 100년을 넘게 버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완벽한 상태다. 따개비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만약 바다에 있었거나 그렇게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다면 종이가 햇볕에 녹아내렸을 거고, 읽을 수 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는 1916년 8월 15일, 병력 수송선 HMAT A70 발라렛을 타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에서 출발해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던 중 쓰여진 것이었다. 출발한지 3일만에 작성됐다.

편지의 작성자는 당시 27세의 맬컴 네빌, 38세의 윌리엄 할리였다. 두 청년은 집 주소를 적고 만약 누군가 이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면 가족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발견자가 지금의 우리처럼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네빌은 “어머니,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까지 음식은 정말 맛있었어요. 바다에 묻어버린 한 끼를 제외하고는 말이죠”라며 가벼운 농담을 적기도 했다.

이어 “배는 흔들리고 또 흔들렸지만 우리는 래리만큼 행복해요(happy as Larry)”라고 적었다. '래리만큼 행복하다'는 표현은 19세기 권투선수 래리 폴리에서 따온 호주 속어로 현재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편지에 쾌활한 태도가 묻어났던 두 청년은 전쟁으로 사망했다. 네빌은 전쟁 1년만에 전사했으며, 할리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18년 뒤인 55세 무렵 사망했다. 할리의 가족은 그가 전쟁에서 독일군으로부터 독가스 공격을 받아 암에 걸렸다고 전했다.

편지를 발견한 브라운은 두 사람의 집을 찾아 편지를 전해주기로 했다. 네빌이 적어둔 어머니의 마을은 이미 유령도시로 변했지만 두 사람의 이름과 과거 주소를 바탕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족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할리의 손녀인 앤 터너는 가족이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기적 같았다.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기뻐했다.

네빌의 조카딸인 허비 네빌도 “믿을 수 없는 발견이었다”면서 “전쟁에 나서는 걸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때문에 너무 슬프다. (전쟁으로) 떠나신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