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AI데이터센터와 녹색금융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챗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 30일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시대의 두뇌라 불리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업무용 빌딩 투자액과 데이터센터 투자액이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AI 전용 센터는 전력을 3배 이상, 냉각용 물을 60% 이상 더 소비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가 기피시설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정된 국내 전력망과 수자원 여건을 고려하면 AI데이터센터의 입지 문제는 곧 국가 에너지 인프라의 지속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AI 인프라 구축은 늦출 수 없는 국가 전략 과제이기에, 효율과 환경을 동시에 달성할 제도적·금융적 혁신이 절실하다.

우선 핵심은 기술 패키지별 녹색금융 트랙을 확립하는 것이다. AI데이터센터의 전력과 냉각 문제는 기술적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첫째, 액침냉각·액체냉각과 같은 고효율 냉각 기술은 서버 밀도를 높이면서 냉각 전력의 30%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유수의 전자회사가 최근 공조회사를 인수하거나 관련 사업을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 폐열 회수 및 지역난방 연계는 버려지는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순환형 인프라'로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 간 업무협약(MOU)을 통해 이러한 사업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셋째,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 연계는 부하 급등락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AI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불규칙하고 최대·최소 부하 차이가 극심하므로, 전력망이 이를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적시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와 설비가 필요하다. 이들 기술은 모두 초기 투자비가 크고 기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자금 조달 시 리스크 완화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여기에서 녹색금융의 역할과 기회가 발견된다. 특히 액침냉각, 전력저장장치, 폐열 재이용, 청정에너지 공급과 같은 최신 기술이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패키지 형태의 녹색금융 트랙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친환경 활동을 판별하는 기준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포괄적으로 제시된 '도시·건물 저탄소 인터넷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항목을 AI데이터센터 시대에 맞게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정의된 녹색활동에 따라 전력사용효율(PUE), 폐열 활용률, 재생에너지 조달률, 전력저장장치 용량 등을 핵심 지표로 설정하고, 달성도에 따라 금리나 보증 조건이 달라지는 녹색금융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버넌스·인허가·정책 패키지의 정비가 필요하다. AI데이터센터가 '그린 패스트트랙' 인허가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선행돼야 한다. 예컨대 전력사용효율지수, 액침냉각 적용 비중, 재생에너지 이용 비율과 같은 정량적 목표를 제도화하면, 녹색금융의 심사·인증 기준도 자연스럽게 정립될 것이다. 동시에 폐열을 지역난방망과 연계하는 폐열구매계약(HOPA),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금융기관의 보증, 환경성과를 검증하는 외부검토(Assurance) 체계가 함께 작동돼야 한다.

AI데이터센터의 확장은 단순한 산업 투자가 아니라, 국가의 기술·에너지·금융정책을 통합적으로 시험하는 무대다. 전기와 물, 탄소배출이라는 제약조건을 냉각, 폐열이용, 재생에너지, 전력저장 등 미래 신기술과 녹색금융 생태계를 통해 혁신적으로 극복해야만, 우리나라가 AI 시대의 주권을 지키는 지속가능한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yongjin.park@kispric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