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포스텍과 함께 운영하는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2022년 동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글로벌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포항에 자리 잡은 이곳은 코딩 교육을 넘어 문제 해결, 협업, 사용자 중심 설계 역량을 키우는 '자율 기반 교육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9개월간 운영되는 아카데미 커리큘럼은 코딩 기초부터 디자인, 기획, 마케팅, 접근성, 인공지능(AI), 프로젝트 관리까지 폭넓은 분야가 담겼다. 참가자들은 매주 여러 차례 팀으로 모여 기획과 실행 등을 반복하며 성장 경로를 설계한다. 코딩 기술과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보통의 부트캠프와는 다르다.
프로그램에는 전공이나 연령, 지역과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함께한다. 최근 참여 기수에서는 이공계 비전공자 비율이 40%를 넘는다. 구성의 폭이 넓은 만큼, 참가자 간 지식 수준 차이를 줄이기 위해 기초반 운영이나 개별 멘토링 같은 지원도 병행되고 있다.
멘토는 이들을 옆에서 돕는 조력자다.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학습을 유도하는 '지원자'에 가깝다. 병원 UX 디자이너 출신으로 현재 아카데미 디자인 멘토를 맡고 있는 구슬지(지쿠) 멘토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문제 자체를 스스로 정의하고 설계해 나가는 구조”라고 아카데미를 설명했다.

실제 팀 프로젝트에서는 리더를 따로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공동의 목표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역할을 자율적으로 조율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지쿠 멘토는 “멘토가 직접 이런 협업 문화를 보여주는 '모델링' 역할을 해야 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은 '정답이 없는 환경'이다. 스타트업 PO 출신 이준민(곰민) 멘토는 “러너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한 건 일괄적인 기준이 아니라 지금 자기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게 해주는 것”이라며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르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실험하는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실제 러너들은 팀을 이뤄 사용자 인터뷰, 기능 구현, 수익화 방안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러너들 간의 협업 방식도 유연해진다고 한다. 지쿠 멘토는 “누가 리더인지보다, 공동의 목표를 어떻게 정렬할지 고민하는 구조를 만든다”며 “멘토들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감정 조율이나 팀 내 갈등, 상호 피드백과 같은 과정 뿐”이라고 말했다.
향후 아카데미는 국내 상황에 맞는 운영 철학과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다져갈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일부 해외 아카데미가 고유 주제나 분위기를 앞세운 운영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포항 아카데미 역시 지역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발전 방향을 찾고 있다. 현재도 수료 이후 러너들의 진로 설계를 돕는 커뮤니티 운영과 동문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남궁경 기자 nk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