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다양한 트렌드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는 내년을 준비하는 개인과 기업들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특히 올해 출간된 트렌드 서적들이 인공지능(AI)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면, 2026년 트렌드 서적들은 'AI와 함께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를 묻고 있다.
이제 AI는 더 이상 신기한 첨단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소비, 비즈니스, 그리고 정서적 삶까지 송두리째 재편하는 상수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주요 트렌드 서적에서 언급한 AI 관련 핵심 토픽을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내년도에 무엇이 뜰까'를 점치는 것이 아니다. AI는 더 이상 예측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현재이기 때문이다.
주요 트렌드 서적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AI가 일상의 인프라가 된 세상에서의 본질적 변화다. 먼저 2026년 트렌드에서 이야기하는 AI기술은 더 이상 사용자의 명령을 기다리는 수동적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일하는 방식, 소비 방식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결합된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컨디션과 욕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준다. AI는 인간의 의사 결정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능동적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삶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인간의 판단 과정을 AI 알고리즘에 위임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 만능주의가 팽배할수록 '인간 중심 트렌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라이프 트렌드 2026'이 제시한 '인간 증명'과 '트렌드 코리아 2026'의 '근본이즘'은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가짜 정보와 무한 복제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정면으로 다룬다. AI가 모든 것을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 진짜의 가치와 변치 않는 고전적인 가치가 부상하고 있고, '인간 다움'을 증명하는 기술과 태도가 오히려 차별화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2026 트렌드 노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 등 주요 트렌드 서적에서도 AI시대, '나'의 실체성과 아날로그 취미, 실제 공간과 경험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2026년은 고효율을 추구하는 기술의 흐름과, 상실의 위기에 처한 인간 고유성을 지키려는 본능이 팽팽하게 맞서며 공존하는 이중적 시장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이러한 이중 구조 속에서 마케터와 기업이 설계해야 할 2026년의 고객 경험 전략은 명확하다. AI와의 완벽한 공존을 토대로 '인간 본질'을 재탐색하여 브랜드와 서비스를 정점에 올려놓는 것이다. 고객은 이미 고도화된 알고리즘에 길들여져 있다. 기업은 개인화를 넘어, 고객의 잠재적 욕구까지 예측하는 초개인화 서비스를 기본값으로 제공해야 한다. AI가 '효율'과 '속도'를 담당한다면 브랜드는 '의미'와 '공감'을 담당해야 한다. 트렌드 서적들이 강조하는 '경험의 사치'나 '근본이즘'은 기술로 코딩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AI처럼 치밀하게 분석하고, 사람처럼 따뜻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AI시대가 요구하는 고객 경험이다.
2026년은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적 대국이 있은 지 딱 10년이 되는 해다. 지난 10년이 'AI가 인간을 이길 것인가?'라는 두려움과 경쟁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AI와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제 상수다. 변수는 그 기술을 활용해 어떤 인간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우리의 상상력과 철학이다.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