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반도체, 상품과 전략 무기

포토레지스트(PR) 논란이 재부상했다. 감광액이라는 물질로,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2019년 일본이 한국 수출을 규제했던 3대 품목 중 하나다.

당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이 PR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용 PR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삼성전자와 동진쎄미켐이 절치부심 끝에 EUV용 PR 국산화에 성공했고 규제는 풀렸으나,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 PR가 6년 만에 다시 주목받는 건 일본과 중국 간 갈등 때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중국의 대만 공격 시 일본 개입을 시사하면서부터다. 중국은 “참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양국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이 PR의 중국 수출을 가로막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일본 PR 기업들이 개별로 공급 물량을 줄이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다.

PR 수출 통제가 사실이냐도 중요하다. 반도체 공급망에 미치는 여파가 워낙 커서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PR라는 상품이 언제든지 '전략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PR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이 공급을 통제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은 2019년 한국처럼 비상사태가 된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가 국가 전략 무기가 된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최신 반도체 공정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가로막기 위해서다. 도쿄일렉트론(TEL)이 있는 일본과 ASML의 네덜란드 등 동맹국까지 동원했다.

중국도 맞불을 놨다. 미국을 겨냥한 갈륨 수출 통제다. 갈륨은 전력과 군수·방산용으로 주목받는 '질화갈륨(GaN)' 반도체 필수 소재이자 광물이다. 중국이 세계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소부장 뿐 아니라 반도체를 설계하는 소프트웨어인 '설계자동화(EDA) 툴'도, 나아가 인공지능(AI) 가속기 등 반도체 칩 자체도 통제 대상이 됐다. 이제는 반도체를 둘러싼 모든 생태계 요소가 전략 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

반도체 상품이 전략 무기가 되려면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경쟁력이 있다. 바로 메모리다. D램은 우리가 세계 시장 점유율 70% 수준이다. AI 구현에 핵심인 HBM은 더 강력하다.

그러나 '메모리=한국의 전략 무기'라는 등식은 아직 성립하지 않는 듯하다. 중국이 기술적으로 맹추격하고 있어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은 위태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치밀한 고민이 부재하다. 메모리 초격차를 실현하면서 이를 외교·통상의 지렛대로 삼는 것도 방법이다.

대만이 TSMC를 앞세워 '실리콘 방패막(Silicon Shield)'을 확보했다는 말이 있다. 독보적인 반도체 기술과 생산 능력으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효성 논란은 있지만, 분명한 건 파운드리 자체가 전략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도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어야 한다. 칼은 칼집에 있어도 무서운 법이다.

[ET시선]반도체, 상품과 전략 무기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