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품 하나가 복수 원산지를 갖는 이른바 '1물(物) 다(多) 원산지 시대'가 본격화된 가운데 미국이 이를 겨냥한 관세 조치를 확대하면서 우리 기업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한국산으로 수출하지만, 미국 세관에선 중국산으로 판정되는 이중 원산지 체계가 현실화하면서다.
이에 △사전심사 △원산지·이전가격 관리 △FSFE(First Sale For Export) 제도 등을 활용해 관세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10일 '美 관세 파도에서 살아남기: 실무 유의사항과 대응전략' 보고서를 내고, 대미 수출기업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원산지·품목분류·이전가격 관리 및 관세 절감 전략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하나의 제품이 특혜원산지와 비특혜원산지에서 서로 다른 국가로 판정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비특혜원산지는 '실질적 변형'을 기준으로 구성품 단위까지 원산지를 쪼개 판단한다.
보고서는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비교 예시를 들었다. 중국산 원재료 a와 국내 조달 b·c·d를 활용해 완제품 E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할 경우, 한미 FTA 기준에서는 한국산으로 인정되지만, CBP는 완제품을 '중국산(a)'과 '한국산(f)' 두 갈래로 나눠 비특혜원산지를 판정할 수 있다. 구성품 분리 원칙이 작동하는 만큼, 수출기업의 원산지 문서 관리 수준이 강화되지 않으면 뒤늦은 세액 추징 위험이 발생한다.
이 같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핵심 수단으로 미국의 '사전심사' 제도가 있다. 품목분류·원산지·과세가격 등에 대한 사전 판정을 받으면 모든 미국 세관에서 동일한 유권해석이 적용된다. 통관 단계에서의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실제 한 국내 기업은 지난 5월 자동차부품 품목분류 사전심사를 통해 기존 '기타철강제품'(철강관세 50%)에서 '유압밸브부분품'(자동차부품 관세 25%)으로 분류가 변경돼 해당 관세를 모두 면제받았다.
제조사-중간상-미국 수입자가 존재하는 거래구조에서 최초 단계의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인정받는 FSFE 제도를 활용하면 합법적·구조적 관세 절감이 가능하다. 다만 미국 세관의 사후 검증이 엄격해 문서화·증빙 관리가 필수라는 점도 덧붙였다.
강금윤 무협 수석연구원은 “한미 간 관세율이 확정된 이후, 실무적 관세 절감 방안에 대한 기업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며 “과거 한미 FTA 발효기에 적극적인 원산지 관리로 부담을 줄였듯, 미국 관세 확대 국면에서도 기업의 능동적 대응이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