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한미 원자력협정의 열쇠](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2/21/news-p.v1.20251221.4b9e7801b8f74456b8dbb130f73c0479_P3.jpg)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둘러싼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정부는 미국에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줄이고 이를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 정책의 대계를 결정할 중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한국의 재개정 의지에 걸맞은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핵 비확산 원칙을 고수해온 미국을 설득할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연구개발(R&D)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 에너지 환원 의지·계획·기술' 확보를 지목한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등을 상업적 에너지 생산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정책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장기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으로 고속로 개발과 혼합산화물(MOX) 연료 활용이행 계획 수립이 꼽힌다.
우리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국가적 계획과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이로프로세싱 등 핵심 재활용 기술 R&D는 동력을 잃었다.
관련 R&D 예산이 전액 삭감 위기에 몰리는 진통 끝에, 현재는 5년간 총액 300억 원 남짓한 소규모 사업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전문 인력이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실증은커녕 기초 연구조차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지나치게 들리진 않는다. 활용 계획과 R&D 의지가 불분명한 국가에 핵 민감 기술을 허용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명분이 서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정책적 엇박자'는 우리 정부의 진의에 의구심을 갖게 해, 결과적으로 협상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자력 분야 관계자는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려는 외교 노력과 더불어 관련한 구체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필수 절차”라며 “정상간 의지가 분명한만큼 지금 정책, R&D 측면에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짚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현재 국내 핵연료 저장 시설은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면 폐기물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 또한 대폭 개선된다.
경수로 한 기당 매년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20톤에는 최대 250kg의 플루토늄이 포함돼 있다. 이를 재처리하면 석유 약 5억 리터에 달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우라늄 구매 비용 절감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 문제를 집중 점검했다.
한미 원자력 협정 전면 개정이 정부의 의지라면, 그에 부합하는 정책적 결단과 실행력이 뒤따라야 할 시점이다. 원자력 외교의 속도에 맞춰 국내 정책의 시계도 다시 돌려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와 기후에너지부의 상용화 정책을 잇는 통합 로드맵 수립이 시급하다. 그래야 협상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