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인문학 통한 게임 과몰입 치유의 의미 “현실 속에서 삶을 선택할 힘을 회복하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인문학을 활용한 게임 과몰입 아이들의 치유는 음악·미술·체육 등 활동 중심의 개입만큼이나 쉽지 않은 과제로 인식돼 왔다. 빠르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인문학은 느리고 추상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인문학과 게임은 결코 멀리 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한 게임 개발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은 화려한 그래픽이나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사람에게 상상을 창조하게 만드는 한두 문장의 조합일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은 게임과 인문학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가 '상상력과 몰입'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공존 질환을 동반한 게임 과몰입 청소년을 진료하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단순한 행동 통제만으로는 아이들의 변화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게임 이용을 제한하거나 어른의 관점에서 허용할 수 있는 대체 활동을 제시하는 방식은 아이의 내적 동기를 쉽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또, 다른 심리 질환 치료에서 효과가 입증된 인지행동치료 역시 게임 과몰입 행동 조절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아이들은 '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지시가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지 않을 경우 행동 변화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변화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감정, 그리고 그 가치를 스스로 높이고 있다는 체험이 동반될 때에만 시작됐다.

어른들은 종종 현실 생활의 균형이 무너진 원인을 게임이라는 하나의 요인으로 단순화한다. 게임을 하게 된 이후 학습 저하, 학교 부적응, 정서적 문제 등이 나타났다는 표면적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게임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차단하는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아이의 정서적 회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 변화만을 요구하는 접근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어른들은 변화하지 않는 행동에만 집중해 지속적인 교정을 요구한다.

인문학이 갖는 치유적 기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논문을 읽을 때 독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내용을 분석하고 판단하며, 이해와 검증이 행동의 중심이 된다. 반면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그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힌다.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경험처럼 받아들이며, 판단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즉, 논문에서 진실은 증명의 대상이 되지만, 소설에서는 체험의 대상이 된다. 인문학은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 공감은 행동 변화의 정서적 토대가 된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접근은 게임 과몰입 치유에서 기존의 치료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인문학적 치유 과정에서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대신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라고 지시하지 않으며 함께 읽고 쓰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그 결과 아이들은 점진적으로 변화하였으며, 변화된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됐다.

게임 과몰입 문제는 단순히 게임 이용 시간을 줄이거나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가치,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무엇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느끼고 공감하며, 자신을 다시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더 이상 게임만이 유일한 세계가 아님을 깨닫고,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힘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이 인문학을 통한 게임 과몰입 치유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hduk@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