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80〉 [AC협회장 주간록90] 돈은 고개를 숙인 곳으로 흐른다

[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80〉 [AC협회장 주간록90] 돈은 고개를 숙인 곳으로 흐른다

“돈은 물과 같아서 겸손하고 고개 숙일 수 있는 자에게 흐른다”는 말은 창업가에게 유난히 정확하게 들어맞는 문장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인성이나 태도 문제를 넘어, 자본이 움직이는 구조와 창업가 생존 방식을 동시에 설명한다. 물은 높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막힌 곳에서는 썩고,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생명을 만든다. 돈도 마찬가지다. 시장과 투자자는 결국, 자신을 낮추고 흐름을 받아들일 줄 아는 창업가에게 자본을 맡긴다.

많은 창업가가 착각한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기술이 뛰어나면, 열정이 강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투자 현장에서 자본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확신에 가득 찬 창업가'다. 확신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확신이 질문을 거부하고 수정 가능성을 닫아버릴 때 문제가 된다. 겸손하지 않은 창업가는 시장의 신호를 듣지 못한다. 고객 불편을 변명으로 덮고, 투자자 우려를 이해 부족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고개를 들고 있는 동안, 돈은 조용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겸손한 창업가는 다르다. 이들은 자신의 가설이 틀릴 수 있음을 전제로 움직인다. 숫자가 기대에 못 미치면 변명을 찾기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고객 반응이 차갑다면 메시지를 바꾼다. 투자 미팅에서도 '왜 우리는 잘할 수 있는가'보다 '우리가 아직 부족한 지점은 무엇인가'를 먼저 말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투자자는 완성된 기업이 아니라, 함께 수정하고 성장할 수 있는 팀에 자본을 맡기기 때문이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강함이다. 시장은 언제나 창업가보다 크고, 자본은 언제나 냉정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창업가는 비로소 학습 가능한 상태가 된다. 물이 낮은 곳을 만나면 더 빠르게 흐르듯, 자본은 학습 속도가 빠른 팀을 선호한다. 실패를 숨기는 팀보다 실패를 구조화하는 팀에, 과거 성과를 자랑하는 팀보다 다음 실험을 설계하는 팀에 돈이 흐른다.

특히 초기 창업 단계에서는 겸손이 곧 생존 전략이다. 초기 시장은 불확실하고, 제품은 미완성이며, 조직은 취약하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과도한 자신감이 아니라, 끊임없는 조정 능력이다. 고객, 파트너, 투자자, 내부 팀원 모두에게 귀를 열 수 있는 태도야말로 초기 기업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주눅 드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보기 위해 시야를 낮추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을 '완성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기업이 커질수록 더 많은 피드백을 요청하고, 더 느리게 말하며, 더 신중하게 결정한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늘 이런 태도가 있다.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신호다. 이 사람은 자본을 다룰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다.

결국 자본은 사람을 본다. 숫자와 기술을 넘어, 그 숫자와 기술이 어떻게 다뤄질지를 본다. 고개를 들고 있는 동안 물은 지나가지만, 고개를 숙인 자리에는 물이 고인다. 그 물은 다시 흘러 새로운 길을 만든다. 창업가에게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돈과 기회는 언제나 흐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도 이를 알았으면 한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