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귀재' 버핏 없는 버크셔…516조 현금 어디로 가나

워런 버핏. 사진=AP연합뉴스
워런 버핏. 사진=AP연합뉴스

60년간 미국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어온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95)이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났다. 막대한 현금을 쌓아둔 버크셔의 향후 자본 배분 전략에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버핏은 1월 1일(현지시간)부로 CEO 자리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그레그 에이블(63) 부회장이 신임 CEO에 취임했다. 다만 버핏은 회장직은 유지하며,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본사에 계속 출근해 경영 승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버크셔가 보유한 현금이다. 버크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약 3580억달러(약 515조66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버핏이 시장 고평가를 이유로 12개 분기 연속 주식을 순매도하고, 과거 대규모로 진행해왔던 자사주 매입도 최근 5개 분기 연속 중단한 결과다.

실제 지난해 S&P500 지수는 약 16% 상승했지만, 가치 투자를 중시해온 버크셔는 현재 주가 수준에서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S&P500 기업들은 순자산가치 대비 5배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10년 평균(3.9배)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제 관심은 에이블 CEO가 이 막대한 현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쏠린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시장 조정이나 경기 침체가 오기 전까지 공격적인 투자는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배당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버핏은 그간 세금 부담을 이유로 배당에 부정적이었고, 버크셔가 배당을 실시한 것은 1967년 주당 10센트가 유일하다.

에이블 CEO는 2000년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인수 당시 버크셔에 합류했으며, 2018년부터 보험을 제외한 모든 사업 부문을 총괄해왔다. 버핏은 지난해 WSJ 인터뷰에서 “그렉은 모든 면에서 내 기대를 뛰어넘었다”며 “앞으로 20년 이상 회사를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평가했다.

에이블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계속 버크셔일 것”이라며 “지난 60년간 유지해온 자본 배분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충분한 현금 보유와 낮은 부채를 유지하는 '요새 같은 재무구조'를 중시하는 등 버핏의 투자 철학을 공유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에이블 개인의 투자 성과는 아직 널리 검증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버핏이 은퇴를 선언한 이후 버크셔 클래스B 주가는 약 7% 하락했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버핏 프리미엄'이 사라진 결과로 해석한다.

WSJ는 “버크셔 주주들은 에이블이 '제2의 버핏'이 되기를 기대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분석했다. 버핏이 오랜 기간 소수의 최고경영진과 자율성이 높은 자회사들로 구성된 분권형 구조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버크셔는 과거보다 훨씬 거대해졌고,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투자 판단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