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0여년 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새롭게 등장한 '문자'를 두고 심각한 걱정을 했다는 기록을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찾을 수 있다. 걱정의 핵심은 글쓰기가 기억과 이해를 약화시키고 지혜의 외양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우려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문자는 지능을 퇴화시킨 것이 아니라, 지식을 축적하고 전파하는 방식의 혁명을 불러왔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했던가. 오늘날 '숏폼' 콘텐츠를 향한 공포 역시 이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두뇌 썩음(brain rot)'이나,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한다는 '팝콘브레인' 같은 용어들이 마치 새로운 상식인 것처럼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들은 학술적으로 확립된 진단명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변화를 접한 사회적 불안이 투영된 유행어(meme)에 가깝다. 질 낮은 콘텐츠에 매몰돼 뇌가 망가진다는 서사는 인쇄매체, 음성통신, 동영상, 인터넷, 게임 등 기술적 전환기마다 반복되어 온 '도덕적 공황'의 변종일 뿐이다. 역사상 수많은 기술적 전환이 젊은 세대를 멍청하게 만들었거나 도덕성을 낮췄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기술과 문화의 번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숏폼에 몰입하는 장면이 불안을 촉발하는 진짜 이유는 15초의 무한 반복이라는 시간의 길이 자체가 아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화면에 빠져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늦다. 눈빛과 표정이 낯설게 느껴진다. 어른들은 그 순간 '내가 개입하지 못하는 세계에 아이가 방치되어 있다'는 공포를 경험한다. 그리고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경각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불안이 커질수록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구가 금지와 차단이다. 즉각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고, '부모로서 뭔가를 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금지와 차단은 실효성이 낮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멀리는 에덴동산의 사과 이야기에서부터, 가까이는 2011년에 시행되었다가 2022년에 폐지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이르기까지, 내용과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결과는 유사했다. 막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인지상정이다.
물론 정책적 정비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은 미성년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아동 대상 타깃 광고를 금지하는 등 플랫폼 책임을 제도적으로 다루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튜브는 보호자가 자녀의 '쇼츠' 시청 시간을 세밀하게 조정하거나, 피드 노출 자체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틱톡 역시 미성년 계정에 하루 60분 제한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등 이른바 '청소년 보호기능'을 추가하는 추세다. 교육 현장에서도 숏폼을 '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특성을 살린 유연한 적용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의 일부 교사들은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을 60초 마이크로 레슨이나 '핵심 요약 과제'로 활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본질은 따로 있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의 도파민을 '문제'로만 보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도파민이 '어떤 내용과 주제에 반응하는가'이다. 기성세대의 도파민이 선형적인 텍스트의 깊이에서 작동했다면, 신세대의 도파민은 '비선형적 연결'과 '방대한 정보 사이의 맥락을 초고속으로 훑어내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미래 지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장은 불안을 관통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숏폼을 '두뇌 썩음'이나 '팝콘브레인'이라 비하하는 것은, 마치 타자를 치는 손가락 근육의 변화를 보고 펜을 잡는 근력이 약해졌다며 인류의 지성이 퇴보했다고 한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 세대를 성급히 진단하거나 단정 짓는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그 지점에서, 아이들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지능, 즉 다른 방식으로 똑똑해 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빠르게 해소하려고만 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미래의 가능성을 지켜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업이리라 나는 믿는다. 솔직히 고백건대, 이 칼럼은 숏폼 삼매경에 빠진 아이보다 먼저 조급해지는 나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