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신규원전 확정]12차 전기본 시험대…원자력학회장 “AI 수요 폭증, 2~4기 더 지어야”

[李정부 신규원전 확정]12차 전기본 시험대…원자력학회장 “AI 수요 폭증, 2~4기 더 지어야”

#이재명 정부가 26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신규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최종 확정하면서, 원전 정책을 둘러싼 장기간 논쟁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양축으로 한 에너지믹스 체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산업 전기화에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메시지도 분명해졌다. 그러나 정책의 시선이 이미 '11차 이행'에서 '12차 설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12차 전기본 계획 기간은 2040년까지지만, 실제로는 2050년 탄소중립과 AI 시대 전력 경쟁력을 가르는 구조적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성민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이날 공개된 정부 방침을 두고 “11차 전기본 신규 대형원전 2기와 SMR 1기는 당연히 건설해야하고, 12차 전기본에는 신규 대형원전 2~4기, SMR 1~3기를 추가로 더 지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12차 전기본이 기존 계획의 연장선에 머문다면, 2040년 이후 전력 공백과 비용 급증이라는 이중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기후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기후부

◇AI·반도체 등 전력수급 질적 전환 필요

원전 전문가들은 12차 전기본 핵심 변수로 '전력수요 전망치'를 꼽았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첨단 제조업, 전기차 보급 확대는 전력 수요를 단순 증가가 아닌 질적 전환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과거 전력 수요 예측 모델의 상단을 빠르게 넘어서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12차 전기본이 과거 추세를 보정하는 방식에 머물 경우, 계획 자체가 현실을 뒤쫓는 문서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회는 원자력발전 비중 현 35%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2050년 연간 발전수요량이 143.6 GW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전 20년 계속운전, 85% 이용률 가정하고 대형원전 건설 기간(착공~준공)은 후행호기 기준 7년 7개월로 가정했을 때, 대형원전(APR1400)은 2031년부터 2042년까지 매년 1.67기 착공해, 2050년 기준 20기의 신규 대형원전을 가동해야한다는 주장이다. SMR(혁신형 SMR) 역시 2029년부터 2045년까지 매년 0.71기 착공해 2050년 기준 12기 SMR를 운영해야한다고 부연했다.

학회는 “12차 전기본은 2040년까지를 계획 기간으로 삼고 있지만, 신규 원전의 건설 기간을 고려하면 지금 반영되는 결정이 실제 전력계통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은 2040년 이후”라며, 2039~2040년 가동 목표의 추가 신규 원전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2050년 탄소중립 시점에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진다는 의미다.

정부가 제시하는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역시 12차 전기본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태양광·풍력은 탄소 감축에 필수적이지만, 간헐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ESS, 양수발전, 전력망 보강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비용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현재 전기본 논의의 중심에는 여전히 균등화발전원가(LCOE)가 자리 잡고 있다. 발전 단가만으로 전원 간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AI 시대 전력계통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시각이다.

학회는 대안으로 '총전력계통비용(Full System Costs)' 중심의 평가 전환을 요구했다. 발전비용뿐 아니라 계통 안정화, 백업 설비, 출력 제어, 전력망 확충 비용까지 모두 반영해야 실질적인 국민 부담을 계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원전을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12차 전기본을 비용·안정성·탄소 감축을 동시에 고려하는 '설계 문서'로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에 가깝다.

여론 또한 과거와 달라졌다. 정부 여론조사에서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0%를 넘었고, 신규 원전 추진에 대한 찬성도 60% 이상으로 나타났다. 원전 논쟁이 이념의 영역을 벗어나, 전력 안정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현실 문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쟁점은 거버넌스다. 12차 전기본은 단순한 수급 계획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의 전원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청사진이다. 그럼에도 지난 정부에서 과학적 검증을 거쳐 확정된 에너지 정책을 새 정부 출범 후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며 재논의했고 법정 기한을 넘긴 신청 절차와 행정 지연으로 인해 실제 운전 기간이 단축됐다.

이을 두고 학회는 “과학적 데이터와 전문적 검증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참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며, 12차 전기본을 계기로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정비할 것을 요구했다.

[李정부 신규원전 확정]12차 전기본 시험대…원자력학회장 “AI 수요 폭증, 2~4기 더 지어야”

◇실용주의 에너지믹스(원전+재생e)는 세계적 추세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주요국들은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을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재정의하며, 신규 건설과 수명 연장, SMR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는 원자력을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고, 계속운전 확대, 신규 원전 건설, SMR 개발·인허가·실증, 핵연료 공급망까지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2024년 말에는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3배로 확대하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4배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공식화했다. 폐쇄 원전 재가동과 운영허가 기간 대폭 연장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AI와 데이터센터 시대를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전으로 감당한다는 계획이다.

유럽 또한 상황이 유사하다. 유럽연합(EU)은 2022년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시켰다. 이어 'EU 원자력 동맹'을 결성했고, 2024년에는 EU SMR 산업동맹을 출범시켜 2030년대 초반까지 유럽 내 SMR 실증과 배치를 가속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벨기에와 이탈리아도 옵저버로 참여하며 정책 전환 수순에 들어갔다.

프랑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대형 원전 6기 신규 건설과 8기 추가 검토에 착수했다. 영국 역시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현재의 세 배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국가 차원의 전담 기구를 통해 SMR 사업자를 압축 선정했다.

북유럽도 실용주의 에너지믹스에 나서고 있다. 스웨덴은 신규 원전 부지 제한과 총 기수 제한을 폐지하고, 향후 20년간 최대 10기 추가 건설을 추진하며 건설비의 75%를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핀란드는 원자력에너지법을 전면 개정해 원전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지하처분장을 완공해 '원전의 마지막 과제'까지 해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