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PG사, 신탁·보증보험 가입 막혔다

사진=챗GPT
사진=챗GPT

전자지급결제대행(PG) 정산자금 외부관리 의무화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중소 PG사들이 존립 위기에 놓였다. 중소 PG사는 영세 가맹점의 결제 인프라를 담당해 왔지만, 외부정산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게 작동하면서 연쇄 도산 우려까지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중소 PG가 무너지면 피해는 결국 소상공인에게 돌아간다”는 경고가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PG사의 지급보증보험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정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PG사는 정산자금을 신탁하거나 지급보증보험 방식으로 외부 관리해야 한다.

법령상 유일한 지급보증보험사인 서울보증보험이 정산자금 규모와 동일한 수준의 자기자본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50억원의 정산자금을 외부관리하려면 50억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법에 명시되지 않은 과도한 기준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보증보험이 보증 심사를 통해 리스크를 판단해야 할 역할을 회피한 채, 과도한 자기자본 요구로 안정성만 확보하려 하고 있다”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보증보험이 막히자 중소 PG사들은 시중은행 신탁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은행들은 정산자금 규모와 신용도를 기준으로 신탁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신탁 가입 요건을 정산자금 10억원 이상으로 설정했고,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PG사는 가입이 불가능하다.

최근 신한은행이 신탁 가입 최소 기준을 1000만원 수준으로 낮추면서 일부 중소 PG사가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주거래은행 여부와 추가 심사 등 또 다른 허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단일 시중은행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중소 PG사의 외부정산을 모두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

은행들이 신탁 상품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수익성 문제가 있다. 정산자금은 결제와 정산 과정에서 유입과 유출이 잦아 평균 잔액이 크지 않다. 관리 부담에 비해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이어서 적극적으로 취급할 유인이 크지 않다.

설령 신탁에 가입하더라도 중소PG사 부담은 이어진다. 지급보증보험은 신탁과 달리 정산자금을 다른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다. 반면, 신탁은 정산자금을 고정 자금으로 묶는데다 수수료까지 내야한다. 중소PG사는 통상 거래금액의 2%대의 중계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데, 외부관리 의무화 이후 정산자금 운용에 따른 단기 이자나 부가 수익이 차단됐다. 여기에 신탁 수수료까지 더해지면서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외부관리 요건을 맞추는 순간 사실상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제도는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 이후 소비자와 판매자 보호를 위해 추진됐다. 그러나 규제의 초점이 문제의 원인이 된 이커머스 플랫폼이 아니라, PG사에 맞춰지면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지급보증보험과 신탁 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PG사가 늘어나자 업계는 최근 금융감독원에 제도 개선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PG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무리하게 법령을 바꾸면서 제도가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중소PG사 도산이 시작되면, 영세 소상공인은 더 비싼 수수료를 내고 PG사를 갈아타야 한다”고 말했다.

박두호 기자 walnut_park@etnews.com